윤계섭 <서울대 교수ㆍ경영학>

1961년 5월16일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후진국 경제 발전에 관한 상식을 뒤흔들었다. 수많은 학자들과 해외 원조 기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수를 중시하는 수입 대체 발전 전략을 폐기했다. 1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대외지향적 발전 전략을 내놓았다. 기술과 자본의 부족으로 실패하리라던 수출을 한국경제의 견인차로 자리매김했다. 6 · 29선언 이후 민주화 22주년을 맞는 오늘날 군사 쿠데타가 용인될 수는 없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발전 전략은 아직도 유효해 보인다.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내수시장 중시론은 한계가 있다. 해외시장의 부침에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해서는 국내시장이 커져야 한다는 논리는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수시장 의존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지기 위해서는 일련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국민소득이 일정하다고 할 때 국민 일인당 소비가 늘어나거나 정부의 지출이 큰 폭으로 많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구가 증가해야 한다. 만족시키기 어려운 조건들이다.

우선 국민 일인당 소비가 무한정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의 경우가 보여주듯 소극적인 소비는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과소비의 문제는 더 크다. 금융위기 이후 가처분 소득보다 훨씬 더 많은 소비를 하는 미국 경제의 문제점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위태롭게 된 주범은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와 아울러 일반 국민의 무절제한 소비와 이로 인한 가계 부채 증가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 지출의 확대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 정부가 금융회사를 국유화하고 천문학적인 적자 재정을 편성하자 케인시안 경제정책이 부활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 정부의 개입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지적과 같이 비대한 국가 부분은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가장 어려운 일은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국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출산율은 1.2명에 불과하다. 조사대상 193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외국인 이민자의 유입도 대안이 아니다. 유입 속도가 빠르지 못할 뿐 아니라 무분별한 유입은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남북 통일은 인구 수를 늘리고 내수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제3의 길이다. 그러나 통일은 우리가 원한다고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수출입국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수출은 실업률의 상승을 막을 뿐 아니라 달러를 벌어들여 국내시장의 자금 유동성에 숨통을 트이게 해줄 것이다. 물론 섣부른 낙관론은 금물이다.

수출입국론의 전제는 수출이 잘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출이 내리막길을 걸을 경우 경제는 수출도 안되고 내수시장에도 의존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의 움직임이다. 시사월간지인 애틀랜틱이 지적한 바와 같이 중국은 세계경제 위기를 자국 경제를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서비스 상품의 수출이 미미한 것도 큰 문제다. 금융,교육,의료,관광과 같은 3차 산업은 아직도 국내용에 머물러 있다. 서비스수지 적자를 악화시키며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가 세계 수출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는 한편 서비스 산업을 차세대 수출 산업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는 친환경기술과 같은 신기술의 개발과 아울러 세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앞날을 결정할 일이다. 경제구성원들의 총의를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