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분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탄식했다.
“법사님, 혹시 저보고 죽으라는 하늘의 계시인가요?”
사연인 즉 이랬다. 그 분은 새로 산 네비게이션을 장착하고 폼 나게 길을 나섰다. 서울 길은 워낙 복잡하고, 특히 밤길은 거기가 거기처럼 보여서 네비게이션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네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좌로, 우로, 가다보니 이상했다.
“직진하시오.”
앞을 보니 검푸른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네비게이션 말대로 하면 강다리 아래로 떨어지라는 것 아닌가.
직접 격은 네비게이션 일화는 너무도 많다. 네비게이션에 의존한 젊은이의 차를 탔다가 그 자리를 얼마나 빙빙 돌았는지 모른다. 호언장담하던 그가 쩔쩔 매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그는 단순히 네비게이션의 명령으로 운전하는 로봇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요즘 일본에선 아주 간단한 핸드폰이 인기라고 한다. 카메라와 MP3플레이어, TV까지 볼 수 있게 만든 핸드폰 시장에 작은 액정과 통화기능만 있는 핸드폰이 불티나게 팔릴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기능 핸드폰 대신 단순하고 편리한 핸드폰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은 바로 심플 라이프 추종자들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자기도 모르는 핸드폰 중독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항상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어야 하고 5분 단위로 핸드폰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불과 5~6년 사이에 전 세계인에게 전파된 핸드폰 중독증이다.

한창 공부할 나이인 학생들만 해도 핸드폰이 없으면 등교를 못한다. 학교 숙제는 놓고 가도 핸드폰이 없으면 집까지 뛰어가 다시 가져오는 요즘 학생들을 두고 '엄지족'이라 부른다. 나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학생들의 엄지손가락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부끄럽지만 나는 최근에야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다. 아직도 내 주위에는 문자를 보내지 못하는 분들이 숱하게 많다.

그럼 과연 엄지족인 학생들의 학업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몇 년 새 각 대학에서는 학업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최근 입학생을 위한 기초학업 강의를 열고 있다. 각종 최신 기계의 특혜를 받은 학생들이 오히려 사고력과 탐구력이 떨어져 학업 성취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언뜻 핸드폰으로 문자와 카메라, MP3 플레이어 및 게임에 채팅, 셀 수 없이 많은 기능을 200% 즐기고 있는 신세대들이 상당히 머리가 좋아 보이지만 오히려 아날로그 세대에 뒤떨어진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는 항상 단순하게 살자고 말해왔다. 뭐든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발전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 나까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다양한 기능의 복합 핸드폰은 무척 편리한 기계다. 그러나 복잡한 기계 안의 편리한 세상에 빠져들다 보면 오히려 사람의 사고력은 마이너스가 되고 어느새 기계 의존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첨단 기계 문명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늘 심플 라이프를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이 만든 놀라운 세계에 익숙해지다 보면 정말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특히 뭔가 큰 것을 이루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욱 더 단순해져야 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작은 지식이 눈을 가리면 큰 것을 놓칠 위험이 크다. 인간의 영혼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나의 영적 직관력의 원천도 단순함이다. 파스칼의 말을 빌면 '마음은 이유를 알고 있다'. 즉 마음이 알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많은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그 단순함은 사람을 밝고 명료하게 만든다. 내 주변에 흔히 푼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치고 못사는 사람이 없다. 남들은 그 분들을 보고 '생각 좀 하고 살라'면서 농담 삼아 핀잔을 주지만 많은 생각 없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며 뒤에 가서 큰 소리로 웃는 게 잘 사는 푼수들의 특징이다. 그들이 잘 사는 이유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 단지 단순하니까 복이 온다고 밖에. 성공하고 싶은가. 그럼 이 순간부터 단순해지길 바란다. 그것이 1단계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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