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를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은 비리혐의와 그에 따른 검찰수사였다. 재직기간 중 가족들이 절친한 사업가로부터 수십억원의 돈을 받은 것이 드러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포괄적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될 처지에 놓여 있었다. 도덕성이 유일한 정치적 자산이었던 그가,"이권개입이나 인사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공언했던 그가,자신의 비리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으니 겪어야 했을 심적 고통이 오죽했을까.
우리는 이번 일로 건국 이래 모든 전직 대통령이 행복한 결말에 이르지 못한 매우 불행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야 했으며,윤보선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쫓겨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손에 운명을 달리했으며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은 퇴임 후 뇌물수수 및 반란 혐의로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식들이 비리혐의로 사법처리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는 이번 일로 종결됐으며,따라서 그의 비리 연루 여부는 법적으로 확인될 길이 없어졌다. 만약 그가 가족들이 돈을 받은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재임 중 각각 수천억원의 뇌물수수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전,노 두 대통령에 비하면 액수도 적고 상대방이 오랜 지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수사가 무리하게 진행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선진사회의 규칙인 것에 비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제 다시는 우리 대통령들이 퇴임 후에 수사를 받고 사법처리를 당하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국민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것을 보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치문화가 한 단계 더 성숙해져야 하고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에게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줄을 대서 사리를 취하려는 무리가 꼬이기 마련이다.
또한 이번 기회에 사정기관의 역할을 재확립해야 한다. 사정기관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이미 일어난 범죄를 밝혀 형벌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것이다. 권력자나 그의 친인척들이 비리에 노출될 가능성이 포착되면 그 즉시 개입해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일만 하더라도 국가정보원 요원이 일부 연루된 정황이 있는 등,우리 사정기관들이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의심이 간다. 만약 검찰 등의 기관이 사실을 인지하고도 가만히 있었다면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또한 살아있는 권력은 손대지 못하면서 죽은 권력의 잘못만 들추는 사정은 우리의 정치문화 발전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조선시대에는 그래도 사간원 등 삼사의 관리들이 목숨을 내놓고 왕의 언행과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기개가 있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