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원조시장이야말로 우리 기업들에는 블루 오션이 될 것이다. "

정부 차원의 대외 무상 원조를 전담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박대원 이사장(62)은 '무상 지원'의 진정한 의미와 다양한 효용성을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아시아 구상'을 뒷받침하는 것을 비롯해 우리의 외교 지평을 넓히고 자원 외교를 추진하는 데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대외 원조 만한 것도 없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게 되면 우리 기업들도 1000억달러의 원조시장에 입찰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등 경제적 효과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절대로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3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박 이사장을 경기 성남시 집무실에서 만났다.

▼취임 1년이 됐는데.

"30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KOICA 총재(현재 이사장)에 취임했다. 외교관 30년 세월도 소중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돕는 일을 해 온 지난 1년이 매우 보람 있었다. "

▼최근 해외봉사단 통합 브랜드가 출범했는데 그 의미는.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해외 봉사단을 '월드 프렌즈 코리아(World Friends Korea)'라는 단일 브랜드로 통합했다. 봉사 활동을 통해 가난하고 힘없는 지구촌 이웃의 든든한 친구가 되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염원이 담긴 명칭이다. 브랜드 출범으로 우리나라는 '국제 사회에 기여하는 한국인'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더욱 선명하게 알리게 될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해외 봉사단이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된 만큼 단계적으로 '선택과 집중'의 원칙하에 파견 지역,분야 등을 조정해 효율을 극대화할 것이다. 또 수요가 많은 정보기술(IT),보건의료,한국어 교육 분야 단원을 중점적으로 파견할 계획이다. "

▼봉사가 국가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국민들 상당수에게 '미국은 우리를 돕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각인돼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은 많은 봉사단원과 각종 원조로 우리나라를 도왔다. 원조와 해외 봉사활동이 한 나라 국민들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하는지 직접 체험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봉사단원들이 파견돼 있는 캄보디아와 라오스,페루,우즈베키스탄 등 40여개 국가에서는 어느 새 '한국은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뿌리 내리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밑거름이다. "

▼경제 위기 속에서도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무상 원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자가 인색하면 인격이 떨어져 보이는 것처럼 국제 원조를 잘 하지 않는 나라도 국격(國格)이 떨어져 보이게 된다. 국민 소득의 1%가량을 공적개발원조(ODA)에 내놓는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의 국격이 자연스레 높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정치 · 경제 · 사회적으로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 빠르게 원조 예산을 늘려가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국력에 맞게 ODA를 확대하면 우리를 보는 국제 사회의 눈은 달라질 수밖에 없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사라질 것이다. "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지원이 인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발도상국을 다니다 보면 KOICA가 원조를 진행 중인 개발 사업에 대한 현지의 평가가 상당히 긍정적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양적인 면에서 아직 부족하다. 국민소득 대비 ODA 비율이 지난해 0.09%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가입을 준비하고 있는 OECD의 DAC 회원국 평균은 0.3%에 이른다. 다행히 ODA를 꾸준히 늘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원조 규모를 급격히 확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효율적인 지원 방법은.

"일본에 비해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금액으로 더 큰 효과를 거둔 사례가 있다. 현재 라오스 중 · 고등학생들이 보는 교과서 뒷면에는 태극기가 라오스 국기와 나란히 인쇄돼 있고 '대한민국과 KOICA 지원으로 출판됐다'는 문구가 영어와 라오스어로 쓰여 있다. 교과서 제작 지원사업에 투입된 돈이 300만달러 정도 된다. 일본은 현지에 3000만달러를 투입해 도로를 건설해 줬지만 우리의 교과서 사업보다 더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 못했다. "

▼원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는.

"무상 원조로 돌아올 경제적 효과를 직접적으로 연관 지을 수는 없다. 다만 부수적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알제리의 신도시인 시디 압델라의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재원 100만달러를 KOICA가 지원했다. 이것이 2008년 8월에 경남기업이 8억달러짜리 공사를 수주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작은 것을 기여해서 큰 것을 가져오게 된 셈이다. 호주 국제개발청이 인도네시아에 제공한 원조의 간접적인 효과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원조 금액 100달러당 178달러의 이익이 돌아온다고 한다. 우리의 외교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지렛대 역할도 할 수 있다. 무상 원조는 손해 보거나 대책 없이 도와주는 개념이 아니다. "

▼우리나라의 OECD DAC 가입이 올해 안에 승인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OECD 가입국의 3대 주요 의무 중 하나인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 분야'에 우리나라가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이미지 제고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며 정치 · 외교적으로 국제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빈국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원조 공여국으로 발돋움했음을 세계에 알리는 의미가 크다. 특히 조달 규모 1000억달러에 달하는 ODA 국제입찰 시장에도 우리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 침체 시대에 우리 기업들에는 좋은 기회가 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신아시아 구상을 내놨고,내년엔 아프리카를 방문하는데 ODA 활용 방법은.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KOICA가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아프리카 최빈국들에 우리의 '새마을 운동' 경험을 전수하는 한국형 밀레니엄 빌리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및 사업의 주관 기관인 밀레니엄 프라미스의 제프리 삭스 회장과 함께 5년간 모두 800만달러를 지원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국형 밀레니엄 빌리지는 탄자니아 중부와 우간다 남서부에 각각 2개 마을씩 들어서게 되는데 새마을 운동을 통해서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알제리에 새우 양식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양식 관련 업체의 현지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마련된다는 데 의미가 크다. "

▼지금까지 KOICA가 해 온 사업 가운데 가장 성과가 컸던 것은.


"페루 외곽에 파차쿠텍이라는 인구 10만명의 빈민촌이 있다. KOICA가 이곳에 친선 모자병원을 지어 줬다. 병원이 건립되기 전에는 산모나 태아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병원이 들어선 이후에는 사망률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페루의 산모들이 병원에 와서 무료로 아기를 낳고 산후 조리까지 마치고 간다. 캄보디아에서는 마을의 땅값을 7배로 뛰게 한 경우도 있었다. 수도 프놈펜에서 300㎞ 떨어진 곳에 밧데이라는 곳이 있다. 땅은 매우 비옥한데 물 관리를 못해서 1모작밖에 하지 못하는 곳이다. 14㎞에 달하는 제방을 건설해 줘 3모작이 가능해졌고 부자 마을로 변모했다. "

▼경제위기 속에서 다른 나라를 도울 여유가 있느냐는 여론도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기본적인 의 · 식 · 주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하루 생계비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는 절대 빈곤자들이 10억명에 달하고 이들의 수는 이번 경제 위기로 인해 더 늘어나고 있다. 세계 12위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세계의 빈곤과 고통을 외면한다면 국제 사회의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

대담=홍영식 차장/정리=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