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생이었을 때 실업은 남의 얘기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취업을 하고자 이력서를 내밀었을 때 실업은 곧 나에게로 왔다.

토익 900점에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실력에 알맞은 일자리를 다오.그곳에 가서 나도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취업을 하고 싶다. 사회는 나에게,나는 사회에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 '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구직의 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패러디한 이 시는 취직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일단 '백수'란 타이틀이 붙으면 물질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좋은 직장'을 구할 때까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른바 '프리터족(族)'이 되는 것이다.

프리터족은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일본서 쓰이기 시작했다. 당초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을 가리켰지만 우리나라에선 정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이 버는 돈은 시간당 4000~5000원 정도다. 사무보조에서부터 편의점 근무,목욕탕 청소,대리운전,행사와 예식 도우미,상품포장에 이르기까지 하는 일은 다양하다. 전문성이 있거나 험한 일일수록 수입도 많아진다. 잠을 줄이면서 하루 두세 가지 일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같은 프리터족이 크게 늘어나면서 점차 고령화돼가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 5년 새 97만명(25.5%)이 증가해 이미 478만명(파견 · 용역 · 특수고용 근로자 등 포함)에 달했다고 한다. 특히 30~40대 중 · 장년 프리터족이 2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신규 취업자 증가 속도가 둔화된데다 대졸자가 많은 '학력 인플레' 탓이다.

직업은 신분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뚜렷한 직업이 없다는 것은 삶을 지탱하는 자신감과 대인관계도 함께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공식 실업자는 93만3000여명이다. 프리터족의 대부분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단순 통계에는 이 고단한 인생들이 포착되지 않는 셈이다. 더구나 중 · 장년 프리터족의 상당수는 가족을 거느린 가장이다. 하루하루를 줄타기 하듯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과 고통을 우리 사회가 언제쯤 헤아려주게 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