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교류와 항공편이 늘면서 각국은 다문화로 변화하고 있어요. 미래에는 순수혈족이란 게 사라지고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세계 시민'들로 가득할 겁니다. 글로벌 리더를 지향하는 한국도 다문화 정책을 강화해야 합니다. "

20일 서울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리는 '2009포스코아시아포럼'연사로 초청된 모린 파가듀안 필리핀 국립대 교수(56)는 19일 이렇게 말했다.

포스코청암재단이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인문사회 분야 연구과제를 선정,각국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해 결과를 발표하는 이 행사에서 그는 서울 부평 부천 등 3개 도시에 사는 필리핀 결혼이주 여성 15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한 '결혼이주 여성을 위한 정책과 지원수단에 관한 연구'를 발표할 예정이다.

"결혼과 동시에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영주권이 부여돼야 합니다. 지금은 영주권이 나오려면 2년간 기다려야 하고,이후에도 매년 갱신해야 합니다. 또한 문화교육 프로그램도 양방향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한국 남성들에게 필리핀 문화를 가르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는 거지요. "

한국에 사는 필리핀 결혼이주 여성은 997명으로 전체 6만5846명의 1.5% 수준.중국(31%)과 베트남(8.8%)에 비해 적지만 최근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필리핀 여성과 한국 남성의 결혼은 10년 전부터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다. 통일교의 중매,필리핀에서 일하는 한국 남성과 현지 여성 간의 연애,인터넷 혹은 불법 중개업체(필리핀에서는 불법) 등이 사진으로 매칭시키는 방식이 그것.이렇게 맺어진 대부분의 국제 커플들은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지만 초기에는 문화적 경제적 어려움을 크게 겪는다.

"한국 남성에 대해 전혀 모른 채 결혼하거나 중매업체에 속아서 결혼하는 경우도 있어요. 시댁 식구와 함께 사는 문화도 필리핀 여성들에겐 불편해요. 필리핀에서는 남성이 여성 집에서 살거든요. 옷이나 음식 등도 다르고 자녀 양육과 친척과의 관계 등도 시각이 달라 애를 먹어요. "

그는 필리핀 여성들이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남성과 약자인 여성 간의 결합이어서 여성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한국 남성이 결혼 조건으로 1만2000~1만8000달러를 주지만 그 돈도 신부 집에 가는 게 아니라 결혼 알선업체로 대부분 넘어간다고.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 간의 결혼은 매우 복잡한 사안이어서 단순화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온 외국 여성들을 보호하는 대책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글=유재혁/사진=김영우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