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시기엔 유학(儒學)이 번성하지만 전쟁이 나면 도가(道家) · 불가 철학이 유행하는 것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는 영업맨들이 뜬다. 회사마다 새로운 스타가 등장해 '영업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하고,그들이 올린 성과 덕분에 회사 전체가 살아나기도 한다.

대형 거래선을 상대하는 대기업 영업부를 제외하곤 여전히 영업은 기피 부서다. 특히 사람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영업부서 발령은 '나가라'는 사인으로 읽힌다.

실제로 영업은 고생스럽다. 고객을 만들기 위해 수백 쌍의 커플을 맺어준 가전 판매왕이 있다. '못되면 뺨이 석 대'라는 중매를 성사시키기도 어렵거니와 그들이 결혼에 이르러 혼수를 마련하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을 생각해보라.대출 영업맨들은 새벽녘 아파트 우편함에 전단지를 넣을 수 있어야 문의전화라도 온다. 까탈스럽지 않더라도 고집스런 경비 아저씨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이들은 발품만 수개월을 팔아야 한다. 이런 영업맨들이 있어 회사에는 희망이 생긴다. 남들이 경기 탓을 할 때,더 이상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저을 때 영업맨들은 사람들을 만나고,감동시키며,지갑을 열게 한다.

얼어붙은 시장을 녹이겠다며 영업 전선에 출사표를 던지는 경영자들이 늘고 있다. 이벤트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성과는 '글쎄'다. 평생 을(乙) 역할을 안 해 본 사장들이 세상 쓴맛을 체험하는 것을 성과라고 한다면 몰라도 경영자들이 영업 현장에 나가는 데는 세심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고객은 세 종류다. 돈을 내고 사는 사람인 구매자(purchaser),직접 물건이나 서비스를 쓰는 사용자(end-user),그리고 이들의 구매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력자(influencer)다. 이 가운데 구매자는 영업사원들이 만나야 한다. 사용자는 광고를 통해 만나거나 마케팅 행사를 통해 접촉할 수 있다. 그러나 영향력자는 경영자들이 만날 수밖에 없다. 특히 구매자를 만나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 경영진이 구매자를 직접 만나기 시작하면 기존 영업사원들은 교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향력자는 다양하다. 다른 회사의 사장,최고재무전문가(CFO),사외이사는 물론이고 지역 정치인,지방자치단체 리더,저명 교수 등도 영향력자다. 각종 이익단체,사회단체들도 빠뜨릴 수 없다. 이들은 소비 문화의 방향을 결정짓는 막강한 영향력자들이다. 어려운 시절이라고 해서 경영자들이 영업일선에서 두리번거릴 필요는 없다. 경영자가 챙겨야 할 고객은 따로 있는 법이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