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는 청바지에 면 재킷 차림을 즐긴다. 어지간해선 정장을 입지 않는다. 짧게 자른 머리를 헤어 젤을 발라 적당히 헝클어트린 듯 곧추세운 모습도 그를 대변하는 이미지의 하나다. 호기심 많아보이는 얼굴 표정에선 마치 꿈 많은 소년을 느끼게 한다. 환갑이 코앞이지만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김 대표는 1960년대 후반 수재들이 모인다는 경기고를 다닐 때 그룹 사운드를 만든,엉뚱한 소년이었다. 이전부터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에 빠져들었던 그는 그저 음악이 좋았다.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정식 공연도 가졌다. 서울대 미대 재학 때도 고교 동창인 '아침이슬'의 김민기와 함께 '도비두'(도깨비 두마리)라는 통기타 듀엣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화면을 좌우로 돌릴 수 있는 삼성전자 휴대폰과 빌 게이츠가 찬사를 보낸 아이리버의 MP3 H10 등을 디자인한 김 대표는 청소년기부터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끼'를 키웠다. 그 '끼'는 글로벌 산업계를 놀라게 한 디자인으로 만개했다. 아들 윤민씨 역시 에픽하이 밴드의 멤버로 월드투어 콘서트에 나선 뮤지션이다. 김 대표는 아들을 위해 콘서트 포스터에 담긴 로고를 디자인해 줄 만큼 열렬한 후원자다.

◆닫힌 박스에서 뛰쳐나와라

김 대표는 고정 관념과 정형화된 사고,형식을 무척 싫어한다. 나이로 사람을 재단하는 게 싫어 스스로 출생연도를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벤치마킹(benchmarking)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적절치 않게 쓰일 때는 '모방'이란 말과 다를 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창의와 상상력,젊은 사고,꿈,열정과 같은 단어를 좋아한다. 꽉 막힌 박스에서 나와 마음껏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즐겨 한다. 최근 영국 BBC 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터뷰에서도 정보화 시대에 이어 찾아온 감성의 시대에선 'out of box'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중후장대(重厚長大)가,정보화 시대엔 경박단소(輕薄短小)가 키워드였다면 지금은 후한 마음이 경쟁력을 갖는 온후지정(溫厚之情)이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온후지정은 기술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드러나고,그 같은 디자인의 밑바탕에 상상력이 깔려 있다는 의미다.

김 대표가 1986년 미국 실리콘 밸리에 이노디자인 USA를 설립한 뒤 내건 'CIPD'(Corporate Identity through Products Design · 제품디자인을 통한 기업 이미지 통합)는 글로벌 일류 기업에선 보편화된 브랜드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경쟁 상대를 다른 디자인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와 BCG(보스턴컨설팅그룹)로 보고 있다. 이노디자인은 이미 단순한 상품디자인을 넘어 사용자 연구를 통해 기업의 미래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내는 종합 크리에이티브 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12억원짜리 냅킨 스케치

김 대표는 이노디자인 미국법인과 한국법인,중국 베이징사무소를 오가느라 장거리 비행기 여행이 잦다. 기내식 서비스가 끝난 뒤 다른 승객들이 잠을 청할 때쯤 그는 조용히,그러나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승무원에게 메모지나 냅킨을 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스케치한다. 얼마나 자주 승무원들을 괴롭혔는지,항공사로부터 메모지 박스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숱한 히트 디자인은 이 같은 사색을 통해 나왔다. 김 대표는 2005년 펴낸 '이노베이터'를 통해 100만달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낸 여행용 골프가방 디자인과 더불어 그의 명성을 높인 MP3 및 휴대폰 제품과 랍스터 모양의 가스 버너,잠금장치가 내장된 지퍼 등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처럼 아직은 상상일 뿐인 스케치는 한계가 없는 그의 상상력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는 지금도 메모지를 갖고 다니지 않는다. 우연한 발견과 자유로운 상상을 즐기는 그는 뭔가에 구속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싫어서다. 비행기건,카페건 필요할 때면 냅킨을 달라고 요구한다.

◆자신부터 만족시켜라

김 대표는 디자인은 정답이 없고,그래서 때때로 고통스럽다고 했다. 직원에게 '디자인을 어떻게 바꾸면 좋겠다'고 확실한 지시를 하기 어려울 때면 화가 난다. 그래도 그는 좋아하는 길을 가기 때문에 즐겁다고 했다.

우연히 본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잡지를 보고 충격을 받은 김 대표는 디자인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하던 시절 재수 끝에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고,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을 감행했다. 그리고 현지 디자인회사를 거쳐 일리노이대 교수로 임용됐지만 'design by 김영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노디자인을 차렸고 보란 듯이 성공했다. 이노디자인은 비즈니스 위크와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가 주관하는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IDEA상을 네 번,세계적 권위의 독일 레드닷디자인 어워드도 다섯 차례 수상할 만큼 성공 가도를 질주해 왔다.

김 대표는 "자신의 일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의지를 느낀다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조금 더 소프트해지기를 바란다. 모든 분야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유연한 국가가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20~30대 젊은층을 향해선 꿈을 크게 갖되 작은 시작부터 하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뜨거운 열정과 부지런함과 함께 능력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