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확률 줄여야 성공의 기회 잡는다"
[Cover Story] 리스크 관리는 안전한 도전 방식 찾는 것
500㎡의 밭에 배추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다.

이 농부는 국내 배추농사가 흉작일 때는 높은 가격을 받고 팔 수 있었지만 풍작일 때는 배추가격이 크게 하락해 아예 수익을 남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 도매상이 찾아와 농부에게 제안을 한다.

'내년에 밭에서 생산하는 배추 수확량 전부를 1000만원에 매입하겠다.'

도매상의 제안에 찬성해 계약을 체결한 농부는 다음해 배추 가격이 하락할 것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농사를 열심히 지을 수 있다.

가격이 오르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매년 농약비에 얼마의 수익만 남기기만 하면 되는 농부로서는 도매상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반면 식당에 정기적으로 배추를 팔아야 하는 도매상은 국내 배추 농사가 흉작일 때 가격이 급등해 배추를 확보하기 힘들지도 모르는 위험을 없앨 수 있다.

배추가 풍작일 경우 싼 가격에 배추를 확보할 수도 있지만 미리 밭떼기로 배추를 확보해 두는 게 안정적인 셈이다.

농부와 도매상 간 계약처럼 가격 변동의 위험을 없애기 위한 거래는 고대부터 이어지고 있다.

배추 농사처럼 미리 매매계약해 가격을 고정시키기도 했지만 상품 공급 가능성 자체를 정확히 모를 경우에는 확률을 예측해야 한다.

수익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수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고도의 통계 확률 공식을 활용했다.

⊙ 리스크와 확률,표본조사

위험을 게임에 적용한 사례로 수학자 파스칼의 도박 게임 이야기가 내려온다.

1654년 어느날 도박과 수학에 관심이 많았던 슈발리에 드 메레라는 프랑스 귀족이 당시 유명한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에게 퍼즐 하나를 풀어보라고 도전장을 낸 적이 있다.

운에 맡기고 벌이는 승부(게임 도박)에서 만약 한 사람이 게임에 앞서 있을 때 게임을 중단한다면 그 판돈은 어떻게 분배해야 공평한가를 묻는 퍼즐이었다.

파스칼은 페르마라는 수학자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이 문제를 논의했다.

두 사람은 대수의 구조와 기하학을 통해 각각의 가능한 결과에 대한 확률을 계산했다.

게임을 중간에 그만 둘 경우 그들은 원래 걸었던 돈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얻을 것이고,앞선 사람이 계속 이길 확률과 역전될 확률에 따라 그 분배가 결정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확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해결책은 확률에 따라 게임을 그만둘지 말지를 결정하라는 리스크 관리 개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상점 주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1662년 그론트라는 잡화점 주인은 런던에서 출생한 사람과 사망한 사람에 관한 자료를 작은 책으로 묶어 냈다.

그는 성 사회적지위 연령 종교 직업 계급 등에 각각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이 분포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인구 분포에 따라 사람들의 소비 성향을 예측하고 매매 불가능한 지역은 아예 영업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시도로 시장조사를 시도한 셈이다.

⊙ 리스크 관리와 정보

200년 이상 세계적 보험사의 명성을 놓치지 않은 '런던 로이드 해상보험조합'은 1800년 당시 커피전문점으로 출범했다.

에드워드 로이드가 1687년 템스강 근처 타워 거리에 커피 전문점을 열자 런던 항에 정박한 배의 선원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로이드는 선박의 입출항에 관한 정보 등을 담은 '로이즈 리스트'(Lloyd's List)를 발행했다.

커피점에서는 선박 경매가 정기적으로 행해졌고 신항로의 위험 등에 관한 모든 정보를 교환되었다.

해상보험업자들의 본부처럼 사용된 커피전문점은 보험조합으로 변신했고 이후 보험업 성장의 발판이 되어 위험 관리 기법이 발전하게 되었다.

⊙ 리스크의 도전

1000원을 가진 사람에게 투자 제안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1000원을 투자하시오. 성공하면 2000원을 벌 수 있고 실패할 경우 500원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투자를 할까 하지 않을까?

보통의 경우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금액을 좀 더 올려서 제안해 보자.

'1억원을 투자하시오. 잘 되면 2억원을 벌 수 있소. 그러나 실패하면 5000만원을 잃게 되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앞의 예와는 다르게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유태인 심리학자인 캐네먼(Kahneman)과 트베르스키(Tversky)는 사람은 이해하고 허락할 수 있는 정도의 가능한 손실이라면 기꺼이 투자를 하든가 도박을 한다고 했다.

즉 감당할 만한 손실을 정확히 인지할 수만 있으면 도전의 기회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전의 기회는 성공의 확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손실의 범위로 판단한다.

실패의 확률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이 중요하고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리스크를 파악하는 이유는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하기 위해서이다.

내 위험을 판단해서 보다 안전하게 도전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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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은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불안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Cover Story] 리스크 관리는 안전한 도전 방식 찾는 것
이번 호 생글은 '위험'을 주제로 다루었다.

위험을 주제어로 한다면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을 빼놓을 수 없다.

대입논술 문제에서도 단골로 나오는 제시문이다.

그는 현대 산업 사회의 특성을 '위험 사회'(Risk society)로 정의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위험은 개인이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서 느끼는 불안감이다.

끔찍한 범죄 자체가 아니라 그 범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위험을 느끼는 것이 위험 사회의 속성이다.

물론 그가 말하는 리스크는 눈 앞의 위험이라기보다 직접 감지되지 않는 위험이다.

직접 감지되지 않는 것은 예측하기 어렵고 이는 불안감만 키우게 한다.

인간은 근대화를 통해, 그리고 과학의 발달을 통해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희구해왔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위험의 크기를 키워놓았다는 것이다.

근대화의 성공과 경제적 풍요가 동반하는 대형 사건 사고의 위험이 더욱 커지면서 위험은 정치나 사회적 이슈의 주요 테마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세계 모든 국가에서 주목했던 신종 플루의 경우도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았고 이로 인해 중국과 멕시코가 정치적 긴장 관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사람들은 위험이 다가올 때 반응이 격해진다.

안전에 대한 요구는 커지고 사회의 가장 불안한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위험사회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성찰적 근대화를 제시한다.

근대의 과학기술이 위험사회 문제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문제를 풀어가는 도구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