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작가의 작업실에서 볼 때와 전시장에서 볼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작업실에서는 예술가의 고민과 작업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반면,전시장으로 옮겨지면 더 잘보여지기 위해 디스플레이나 조명 등으로 포장된다. 큐레이터나 전시기획자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지만,작업실에서 좋은 작품을 만나고 감동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최근 방문한 두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화가 황세준의 작업실은 서울 불광동 전철역 부근에 있다. 그를 만나 대로를 건너고 골목길을 지나 작업실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지하 작업실에는 물을 받아내는 양동이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위층 목욕탕에서 떨어지는 물이라고 했다.

바닥은 벗겨져 허름했다. 그러나 그가 작품을 펼쳐 보이자 작업실이 갑자기 다른 공간으로 변했다. 밝은 햇살을 받아 푸르름을 뽐내는 숲으로,어두운 밤거리로,공사 중인 거리로 변했다. 그가 주로 쓰는 회색톤의 그림은 작업실 공간의 색들과 연결돼 있었다. 오래되고 빛 바랜 색들로 둘러 쌓인 작업실이 작품과 어우러져 신기하기도 하고,작품에 쓰인 밝은 색의 빛나는 모습은 렘브란트 회화에서 보이는 빛의 힘을 느끼게 했다.

그림에 의해 주위 환경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회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회화는 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어서 다양한 발견과 변화,무수한 실험들이 이미 이루어졌기에 오늘날의 화가들이 좋은 작업을 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황세준의 작업실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임동식의 작업실은 공주에 있다. 공주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형식에 매달리는 서울의 미술계를 떠나 1980년대 말부터 자연미술 운동을 벌여왔다.

자연에서 발견한 재료인 나뭇잎,나뭇가지,돌,강물,풀 등을 이용해 작업을 했다. 만들고 나면 금방 없어지는 자연미술을 하던 그가 지금은 회화작업을 한다. 그의 회화는 자연 속에서 완성된다. 한 작업당 짧게는 3~4년,길게는 5~7년이 걸린다.

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봄이 지나가면 다음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다시 봄이 오면 그림을 그리다가 완성이 안되면 또 그 다음 봄을 기다린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생기가 느껴지고 자연의 소리,시간이 담겨있다.

회화보다는 설치미술이나 사진작업에 관심이 있던 내게 이 두 작가는 그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심어줬다. 점점 디지털화되고 가짜로 만들어지는 세계에서 손으로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걸까. 현대미술의 매체가 다양해짐에 따라 예술가들의 작업도 공장화되거나 세련된 연구실처럼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두 화가의 작업실은 회화에 대한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임 작가는 다른 작가의 작업실에도 같이 가보자고 한다. 오늘도 열심히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지방 작가들의 작업실을 찾아 기차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