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그룹, 실천없이 말로만 구조조정"

금융팀 = 본격적인 대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채권은행과 대기업 집단의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1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채권은행은 재무개선약정 체결 후보로 거론되는 주채무계열(대기업그룹)에 계열사 및 자산매각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해당 그룹은 재무개선약정 체결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채권은행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벌이는 한편 자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정부와 은행권은 과도한 몸집 불리기로 인해 재무구조가 악화된 일부 그룹들의 경우 자구노력이 미흡한 데다 추진실적도 부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재무개선약정 막판 진통

채권은행은 애초 지난 주까지 45개 주채무계열 중 불합격 판정을 받은 그룹을 중심으로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을 체결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1주일 정도 늦췄다.

단순히 부채비율을 중심으로 평가하기보다는 현금흐름과 자산-부채 구성 등 재무상태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라 주채권은행은 일부 그룹에 대한 막판 점검을 하고 있다.

재무구조평가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그룹도 MOU 체결대상에 포함될 수 있고 불합격 판정으로 약정 체결이 예상되던 그룹이 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해당 그룹들은 MOU를 피하기 위해 채권은행과 금융 감독기관, 정부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며 "재무개선약정 체결대상으로 알려지면 대외 신인도에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일부 그룹들은 자체적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산 및 계열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A그룹은 작년부터 계열 보험사 매각을 추진 중이고 B그룹은 올해 상반기에 시멘트공장과 증권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1천700억 원 안팎의 자금을 마련했다.

C그룹은 철강회사 매각을 진행하고 있고 D기업 역시 렌탈사 등 자회사 매각과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등의 방식으로 총 1조 원 규모의 자금조달 계획을 마련했다.

E그룹은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계열사를 합병한데 이어 일부 사업부를 양도했다.

이원선 토러스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구조조정 이슈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일부 그룹은 자회사 매각을 구체화하고 있다"면서 " 이들은 대부분 작년까지 과도한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웠다가 유동성이 악화된 경우"라고 설명했다.


◇ 채권단 "자구노력 미흡..추가 구조조정 요구"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과 채권단은 개별 그룹의 자체 구조조정 노력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그룹별 자구계획이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에 미흡한 데다 그마저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A그룹은 작년 9월부터 계열 보험사 매각을 추진해왔지만 가격조건이 맞지 않아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고 다른 그룹들도 계열사 매각 등의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시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구조조정을 주문하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누가 보더라도 그 동안 무리했던 부분은 기업들이 조정해야 하고 계열사도 필요하면 매각해야 한다"며 "시장에서도 주채무계열이 어떤 노력을 하느냐를 두고 해당 기업의 신뢰도와 신인도를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채권은행들도 문제가 있는 그룹에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요구할 방침이다.

그동안 방만한 경영이 문제시됐던 일부 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재무상황이 악화된 그룹에 알짜 계열사 매각을 요구할 계획이다.

산은 관계자는 "문제 그룹들은 채권단이나 정부에 손을 내밀 것이 아니라 돈되는 계열사를 우선 매각하고 보유 중인 부동산도 팔아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그룹과 채권단간에 자산매각, 사주의 재산출연, 종업원 고통분담 등을 내용으로 구조조정을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일부 그룹의 경우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지게 된 재무적 부담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이에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못하면 구조조정 압력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재무구조평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14개 그룹은 대체로 ▲능력을 벗어난 M&A ▲자기 고유업종에서 벗어난 타업종에 대한 확장 ▲ 경기침체에 따른 관리능력 부재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주채무계열 평가는 매년 하지만 올해는 과거와 달리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