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며칠 전 현행 평준화 정책 아래 시행 중인 '뺑뺑이' 추첨이 합헌임을 선고했다. 이번 결정은 한 학부모가 "추첨식 배정 방식을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4조가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낸 데 따른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자신의 소신과 다르다 하더라도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지난 정권에서 일부 세력이 부렸던 행태처럼 헌재를 부정하고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 헌법을 수호하는 최고 헌법기관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고자 한다. 다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교육적 폐해가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난 평준화를 합리화하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무모한 시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헌법재판소의 구성으로 볼 때 이번 결정에서 헌재재판관의 소수의견이 결코 '소수'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에는 5 대 4로 헌법소원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다수결의 원칙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번 헌재 결정을 '소수의견'이라고 해서 현행 평준화 정책을 확대해 계속 밀고가야 한다는 논거로 삼기에 매우 미흡하다는 점이다. 네 명의 재판관이 낸 이른바 '소수의견'을 면밀히 살펴보면,기존 평준화 정책이 드러낸 문제점을 모두 지적하고 있다. '소수의견'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학교의 학생선발권에서부터 평등권,종교의 자유 및 사학의 존립과 정체성 문제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 소지에서부터 관련법의 법리적인 문제,법률의 포괄적 위임금지 위반 문제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둘째,이번 결정이 평준화의 합리화로 이어져서 그렇지 않아도 단위학교의 자율이 문제되는 교육상황이 더욱 왜곡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단위학교장에게 교육프로그램 결성권한을 20% 정도 위임하고,교원의 일정부분 인사권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자율권 확대를 실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단위학교의 자율성의 핵은 학생선발권에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규칙에는 평준화 지역 학교는 학생 선발권이 학교장이 아닌 교육감에 귀속되어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이 이른바 '뺑뺑이'추첨배정에 한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려를 자아내는 것은 단위학교 자율의 핵인 학생선발을 원천적으로 묶어 놓았다는 데 있다.

셋째,추첨제를 합헌이라는 헌재 결정은 단위학교가 경쟁체제로 가는 가능성을 더욱 차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첨 방식은 일체의 경쟁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의 평준화 정책만으로도 자유경쟁의 원리가 심하게 훼손되고,평등의 원리가 왜곡되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교육의 국가독점과 개입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또한 추첨에 의한 입학전형은 공 · 사립학교를 불문하고 동일한 전형 방식을 획일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사립학교의 건학이념과 독창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에 합당한 학생선발을 봉쇄하는 문제를 지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헌재결정은 사립학교의 독자적인 의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이번 결정이 로또복권이나 아파트 분양에나 사용되어야 할 추첨제를 통해 아이들에게 사행심이나 조장하고 운명론적 팔자 소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몇달 전 국제중학교 입학전형에서도 추첨제가 적용되어 이 학교의 설립 취지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려는 교육적 배려가 과연 있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럴진대,단지 '뺑뺑이' 추첨제가 합헌이라는 이번 헌재의 결정만 가지고 평준화 정책을 과장하거나 그 폐해를 호도(糊塗)하려는 시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