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나의 아버지,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돈 벌어오는 자의 비애와,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는 신해철 작사 작곡으로 1992년 발표된 대중가요 가사다. 17년이 지난 오늘 어버이 날 아침,발표 당시보다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실제로 부성(父性)이나 아버지 역할에 대한 사회적 규정은 모성(母性)이나 어머니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보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것이 사실이다. 정작 '아버지란 존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나 아버지를 연구하는 역사가가 거의 없음'은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하겠다. 어쩌면 아버지란 위상은 '굳이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만큼 절대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리라.그러나 아버지다움 및 아버지 역할 역시 사회문화적 구성물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사회구조적 변화에 따라 아버지를 둘러싼 규범,가치관,이데올로기 등이 달리 규정돼왔다.

아버지로서의 '경험 자체'가 연구주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건 서구에선 80년대 이후의 일이요,우리나라에선 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이 시기부터 아버지 역할이 남성 자신의 정체감과 삶의 의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아버지의 '재발견'이 시작된 셈이다. 이와 때를 같이해 서구에선 자녀 양육과정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새로운 아버지' '떠오르는 아버지' '포스트모던 아버지'상이 대중매체에 등장하면서 일반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이혼 후 자녀 양육권을 주장하는 아버지 또한 증가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를 지나면서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는가 하면,아버지 의미를 되새겨보는 다양한 프로그램 및 모임이 시작됐다. 와중에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전통적 아버지상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새로운 아버지상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려할 때,외환위기가 닥침에 따라 명예퇴직 · 조기퇴직 가장들이 증가함으로써 아버지 권위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돼갔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할아버지-아버지-아들 세대로 이어지는 가족 내 남성의 위상은 가파르게 내리막길을 달려왔다. "5번(아들)아 잘 있거라 6번(할아버지)은 간다" 했다는 우스갯소리,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 중 하나가 "퇴직한 남편 존경하기"란 농담,예전엔 아버지가 늦으신다 하면 엄마가 아이들 보고 "우리 대충 먹자" 했건만 요즘은 자녀가 과외공부하느라 늦으면 "여보 우리 대충 먹자" 한다는 소리 등등,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왠지 씁쓸한 여운이 남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덕분인가,오늘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버지 세대가 누리던 권위를 상실한 데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과거 전통가족에 대한 향수를 되살려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건 전통가족의 의연하고도 아름다운 이상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단 허구적 신화(神話)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설혹 이상적 전통가족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전통가족의 아버지상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는 한편으론 아버지들이 새로운 변화에 순조롭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자,다른 한편으론 전통적 아버지상을 대체할 새로운 아버지상의 구체적 역할모델이 아직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사회변화의 흐름을 수용하면서 아버지로서의 자긍심과 아버지 역할의 만족감으로 무장한 신(新) 부성의 등장을 기다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