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바엔 정부개혁을 왜 떠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청와대는 더 이상 '작은 청와대'가 아니다. 청와대 직원 수가 참여정부 때보다 20%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났다고 하니 말이다. 청와대로서는 국민과의 소통,비상경제 상황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말하겠지만 언제는 이유가 없어 사람을 못 늘렸는가.

행정안전부는 '비상경제 정부'구축을 위한 대국(大局) · 대과(大課)제 조직개편을 통해 정부부처에서 6개국,219개 과 · 팀을 줄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력감축은 없다. 행안부 관계자는 말한다. "국 및 과 · 팀이 줄었지만 현안과제에 인력을 전환 · 재배치하면서 인력 감축요인은 생기지 않았다"고. 과 · 팀 감축으로 발생한 잉여인력을 경제 살리기(107명),녹색성장 추진(79명),민생안정(145명),대국민 지원(78명),정책기능 강화(139명) 등에 집중 배치해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하기 위해서란다.

'비상경제'를 전면에 내세울 때부터 이리될 줄 어느 정도는 짐작했지만 솔직히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정도 개편마저도 기획재정부 등 몇몇 부처는 못하겠다고 버티는 모양이다. 붙였다,뗐다 조직만 건드리면 뭐하나.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 아닌가.

청와대와 정부부처는 자기들 편한 대로만 한다. 이건 실용주의도 아니고,편의주의 그 자체다. 그런 그들이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공기업 개혁,인력감축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생각해 보면 공공부문을 비대화시킨 것은 바로 정부였다. 그 원인을 제공한 정부가 원초적으로 개혁이 안 되면 공공부문을 아무리 줄인 들 결국은 원위치로 되돌아오고,확장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뿐인가. 정부개혁이란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은법 개정 논란도 결국 마찬가지다. 본질은 제쳐둔 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둘째 치고 이들에게 금융정책을 맡겨두는 국민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다.

여기 저기서 말하는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론'도 실상은 매한가지다. IT(정보기술)계는 컨트롤타워가 없어 IT산업이 안 된다고 하고,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없다고 불평이다. 콘텐츠계는 콘텐츠를 담당할 컨트롤타워가,디자인계는 디자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청이 아닌 중소기업부를 원하고,방통위는 옛 정통부의 산업진흥 역할을 갖겠다고 나선다.

IT업계를 만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IT비서관 신설을 검토하라고 했다. IT비서관만 생기면 컨트롤타워가 되는가. 실효성은 둘째 치고 도대체 우리나라에 컨트롤타워가 얼마나 더 만들어져야 하고,그런 컨트롤타워들에 대한 컨트롤타워는 또 몇 개나 필요한 것인가. 정부조직을 신설하거나 확대만 하면 잘 안 되는 산업도 바로 발전하고 일자리도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보장이라도 있는가.

입으로는 민간자율과 창의성,민간주도 혁신,기업가정신이 절실하다고 말하면서 현실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융합시대를 떠들면서 정부도,민간도 정작 그 행태를 보면 모두 자신들만의 사일로(silo)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게 대한민국 정부개혁의 현 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