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가 와인 가격 파괴에 본격 시동을 걸면서 와인업계는 물론 와인 마니아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설립한 와인 수입사 신세계L&B를 통해 와인을 직수입,수입사 · 도매상 · 소매점을 거칠 때마다 40%씩 마진이 붙는 가격 거품을 거둬 내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실험'이 성공한다면 소비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싸게 와인을 마실 수 있게 된다.


◆와인 가격 최대 절반까지 싸진다

그동안 와인 유통구조는 수입사가 해외 산지에서 수입해 와 도매상을 거치거나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입사들은 40% 안팎의 마진을 붙여 넘기고 도매상 역시 비슷한 마진을 남겼다. 소매 마진까지 감안하면 산지에서 1만원짜리 와인을 소비자들은 4만~5만원대에 사게 된다.

신세계는 유통 단계에서 도매상을 배제하고 자체 마진도 20% 이하로 줄이는 방식으로 판매 가격을 지금보다 10~50%까지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신세계L&B 관계자는 "와인 가격이 10만원 이하이면 마진을 20%,10만원 이상이면 5~10%만 남길 것"이라며 "고가 와인일수록 다른 업체들과의 가격 격차가 더 커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은 L&B에 이익을 남기지 말고 공급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백화점에서 21만원에 팔던 '샤토 탈보 2006'을 48.1% 싼 10만9000원에,130만원짜리 '샤토 무통 로쉴드 2001'은 46.9% 저렴한 69만원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신세계 측 설명이다.


◆와인시장 지각변동 몰고올 듯

신세계L&B는 이번에 9개국 51개 와이너리에서 총 263종,35만병을 들여 왔다. 신세계 4개 점포와 이마트 60개 점포,웨스틴 조선호텔 등 계열사 유통망을 통해 7일부터 판매한다. 신세계L&B는 와인 취급 품목을 매년 100종씩 늘리고 매출은 올해 85억원에서 2011년 490억원,2013년에는 1000억원으로 와인 수입업계 1위에 오른다는 복안이다.

이 같은 신세계의 행보에 와인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와인 매출 750억원으로 전체 시장(5000억원 추산)의 15%를 차지한 와인 유통시장의 최대 '큰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환율 상승을 빌미로 와인 가격을 줄기차게 올려 왔던 수입업체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신세계의 가격 파괴가 실제 이뤄진다면 수입업체들도 이에 맞추기 위해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어 일부 영세 수입업체들 중에는 문을 닫는 곳이 꽤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롯데주류,트윈와인 등 수입업체들은 △1만원 미만의 저가 와인 강화 △소비자 선호 와인의 독점 수입 등 자구책을 찾고 있다.

신세계의 경쟁사인 롯데 · 현대백화점도 와인 가격을 낮추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신사복처럼 와인도 가격을 낮추고 할인 행사를 없애는 '그린 프라이스' 제도를 이달 말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기존 와인 직매입과 앙프리머(선구매)를 확대할 계획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