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언제나 변화를 불러왔다. 멀리는 1930년대 대공황이 그랬고,가깝게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가 그랬다. 그래서 많은 기업인들은 지금의 글로벌 불황이 끝나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물론이고 개별 산업과 기업 지형도가 뒤바뀔 수 있는 까닭이다. 이미 위기를 틈타 급부상하는 국가와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 오일쇼크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활용한 나라다. 제조업의 '경박단소(輕薄短小)'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면서 세계 경제의 주류로 올라섰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 국면 속에서 제조업 강국 일본은 미래 경쟁력을 높일 신산업과 신기술을 뭘로 보고 있을까.

노무라연구소(NRI)는 최근 '일본 경쟁력을 높일 신산업과 신기술' 보고서를 통해 △광전지 패널 △서비스 로봇 △제너릭(복제) 의약품 △하이브리드카 △인터넷 생명보험 등 5가지를 유망 분야로 꼽았다. 보고서를 재정리한다.

◆광전지 패널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광전지 패널 산업은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서유럽은 물론 북미 시장에서도 태양광 발전은 많은 돈이 들지만 지속 확대되는 추세다. 독일은 태양광과 풍력 등 신 ·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 비중이 10%에 도달했고 향후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서유럽 등에선 광전지 패널 업체와 발전소 건설을 위한 엔니지어링 또는 시스템통합(SI) 업체 간 제휴가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광전지 패널 분야에 대한 금융사들의 투자가 줄면서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이 늘면서 산업계 판도가 재편될 조짐이다. 서유럽과 북미시장의 관련 업체 주가도 하락했다. 앞선 기술력을 토대로 광전지 패널 사업을 넘어 태양광 발전소 건설에 직접 참여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제너릭 의약품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진 데다 인터넷 등 의학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늘면서 의약품 소비 패턴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허기간이 끝난 오리지널 약품과 성분이 같지만,값이 최소 30%에서 최대 70%까지 싼 제너릭(복제 의약품) 시장은 꾸준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무라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성인의 80% 이상이 앞으로 진료 과정이나 의약품 선택 등에서 자신의 의사를 적극 나타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 등 각국 정부가 의료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상대적으로 값싼 제너릭 처방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제너릭 시장 팽창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서비스 로봇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서비스 로봇은 대규모 제조공장에서 쓰는 로봇 설비가 아니라 의료 교육 레저 농업 운송 인명구조 등의 분야에 사용되는 로봇을 말하는 것으로 글로벌 전역에서 갈수록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2007년 말 현재 전 세계적으로 4만7000개의 서비스 로봇이 나왔고 연간 시장 규모가 78억달러 이상이다. 2011년까지 5만4000개의 새로운 서비스 로봇이 선보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대기업과 벤처기업들이 서비스 로봇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익 모델은 많지 않다.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수요자 시장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제품 기능 업그레이드 등에 대한 시장 요구를 어떻게 재빨리,매끄럽게 수용할지를 연구해야 한다.

◆하이브리드카

전 세계 하이브리드카 시장은 2020년까지 연간 1000만대를 초과할 전망이다. 친환경 · 고연비 자동차 수요는 지속 증가할 수밖에 없고,대안은 하이브리드카로 귀결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시장경쟁에선 도요타가 앞서 있지만,결국 승부는 가격경쟁력으로 판가름날 수밖에 없다. 어떤 방식의 하이브리드카 시스템을 채택하느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 보인다. 이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뿐 아니라 글로벌 대형 부품사와 배터리 업체 등은 광범위한 제휴에 나서고 있다. 시스템 표준화를 통해 부품 조달비를 낮춘 뒤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간다는 구상이다.

◆인터넷 생명보험

인구 구조 변화가 생명보험 시장패턴을 바꾸고 있다. 일본 등 선진국에선 미혼 가구 및 아이 없는 부부 가정이 늘면서 종래의 가족 구성원 모두를 위한,보장금액이나 범위가 넓은 생명보험 수요는 줄고 있다. 반면 경제력이 약한 노령인구 증가로 질병보험과 소규모 생명보험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다 대면 계약을 기피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인터넷 판매가 갈수록 보편화되고 있다. 따라서 노령인구를 위한 맞춤형 인터넷 상품을 중심으로 생명보험산업도 재편될 가능성이 크고 대비가 필요하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