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오는 6일(현지시간)께 19개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자본충실도 테스트) 결과를 발표한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미 경제 상황이 향후 2년 동안 나빠질 것으로 가정하고 악화된 상황에서 금융사들이 생존할 수 있는가를 점검해보는 것이다. 저성장이 이어지고 실업률이 치솟을 경우 부실자산이 얼마나 늘고,자본은 부족하지 않을지가 핵심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지난해 9월 미 5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진 이후 쏟아져 나왔던 금융위기 대책의 '클라이맥스'다. 부시 정부로부터 월가 부실을 물려받은 오바마 정부 입장에선 시장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미 정부는 지난해 가을 이후 숨가쁜 시장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씨티그룹 AIG 등 부실 금융사에 구제금융을 투입하고,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융사에 거의 무제한으로 돈을 빌려줬다. 투자은행이 은행지주회사로 변신하는 것도 허용했다.

하지만 지난 8개월에 걸친 미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 노력은 시장 신뢰를 얻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유는 뭘까. 여러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정책적 판단 미스'도 꼽지 않을 수 없다.

부시 정부 시절 폴슨 재무장관과 버냉키 FRB 의장,그리고 티모시 가이트너 당시 뉴욕FRB 총재(현 재무장관)는 한 자리에 모여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위기에 놓인 리먼을 파산시키기로 결정했다. 리먼 파산은 대형 금융사도 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짐으로써 금융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극도로 약화시켰다. "리먼 파산은 1조달러의 손실을 초래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두 번째 결정적 실수는 구제금융의 활용 순서다. 폴슨 장관은 리먼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금융시장 개입을 꺼리는 부시 대통령과 의회를 설득해 35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투입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각 250억달러,골드만삭스에 100억달러 등을 지원했다. 이들 금융사의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얼마만큼의 자금을 투입하면 정상화가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게다가 해당 금융사에 뼈를 깎는 자구계획도 요구하지 않았다. 금융사의 부실과 정상화에 필요한 자본 규모를 먼저 파악하고,임직원 보수 삭감 등 자구노력을 전제로 국민 세금을 투입한 한국이나 일본과는 정반대였다.

부시 정부의 실수는 오바마 정부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구제금융을 받아 한숨을 돌리게 된 월가 금융사는 이제 천문학적인 보수를 포기할 수 없다고 버텼다. 미 전역을 들끓게 만든 AIG의 보너스 파동은 이래서 시작됐다. 회사를 부실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도 최고경영자(CEO)들은 자리를 보전했다. 전체 부실이 얼마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금융사 부실자산 처리계획'의 성패와 앞으로 발표할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미 정부 내에선 전체적인 테스트 결과만 발표할지,개별 금융사별 상황도 공개할지를 놓고 설전이 심한 모양이다. 만약 이번에도 금융사별 현황을 밝히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시장의 코스트는 더 커질 것이다. 일부 개별 금융사에 당장은 큰 영향을 미치더라도 구체적인 상황과 수치를 내놔야 한다. 그것이 월가가 신뢰를 되찾고,글로벌 금융시장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