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솔약국집 아들들'서 '복실'로 이미지 변신
유선 "모자라는 역할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복실이처럼 모자라 보이는 역할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시놉시스에서 복실 역을 보자마자 '딱이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배우 유선(33)이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늘 이지적이거나 강인한 역을 맡아오던 그가 뽀글뽀글 퍼머 머리를 한 채 세상 물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듯한 순진하고 순박한 소아과 간호사로 변신했다.

처음에는 실제 모습과 캐릭터 간의 충돌로 불협화음이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KBS 2TV 주말극 '솔약국집 아들들'(극본 조정선, 연출 이재상)의 김복실은 이미 충분히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사실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복실이를 연기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 낯설게 느껴져 '보시는 분들은 괜찮을까' 걱정했어요. 워낙 강하고 딱 부러지는 역을 많이 해왔으니까요. 그런데 하다보니 어느 순간 복실이를 즐기게됐고, 이제는 평소에도 복실이의 어눌한 말투가 튀어나와요."

복실이는 특히 짝사랑하는 의사 대풍(이필모 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다혈질인 대풍이 윽박지르면 금세 주눅이 들어 꼼짝도 못하고, 툭하면 말도 벌벌 떨며 한다.

아이같은 콧소리와 겁먹은 듯한 표정도 그의 전매특허.

"작가님께 너무 감사해요. 대본 받아볼 때마다 너무 기대되고 읽고 나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게 돼요. 촬영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 경쾌해요. 그 어느 때보다 연기를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오랜만에 제 삶에 활력소를 얻은 것 같아요."

신나서 연기를 하다보니 점점 촌스러워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배역과 상관없이 예쁘게 보이고 싶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복실이는 최대한 순박하고 정감있게 보여야 하는 캐릭터에요. 쓸데없이 멋을 부리면 역효과가 나죠. 제가 직접 마트에 가서 발목 양말을 묶음으로 사왔어요. 복실이는 구두에 양말을 신고 뽀글 파마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이예요. 그래서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가져오면 조금이라도 세련돼 보이는 옷은 다 퇴짜를 놓고 있어요. 요즘은 제 스타일리스트가 저를 말리기 바빠요. (웃음)"

그는 "내가 머리를 볶을수록 시청률이 올라가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더 볶을 용의가 있다"며 웃었다.

유선이 이렇게 신이 난 데는 변신에 대한 기쁨 못지않게 시청률의 영향이 크다.

2회 만에 시청률 20%를 넘어선 '솔약국집 아들들'은 최근 3~4년 시청률 갈증에 허덕이던 그에게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시청률이 20%를 넘어섰을 때의 희열은 말도 못했어요. 소원 풀었어요. (웃음) 쭉쭉 올라가 40%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늘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했지만 최근 해온 작품들이 모두 시청률이 낮고 관객 수가 적어 적잖이 속상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많이 봐주시니까 흥이 절로 나요."

영화 '가발'과 '검은집', 드라마 '독신천하'와 '그 여자가 무서워', '떼루아' 등 그는 쉼없이 일했다.

남들은 이렇게 줄기차게 작품을 하면 힘들어서라도 쉬는데 그는 2007년 7개월 정도 쉬었을 때 초조함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일벌레'가 작품의 성적도 신통치 않게 나오니 번민의 시간이 많았다.

"홈런에 대한 갈증이 커요. 잘 돼도 안타에 그쳤어요. '난 왜 홈런을 못 칠까' 고민하는 시간도 많았구요. '검은집'의 경우는 정말 작정하고 뛰어들어 사이코패스 연기를 신나게 했는데 그 영화마저 흥행이 안되니까 정말 속상했어요. '그 여자가 무서워'도 될 듯 될 듯 하면서 대박을 못 쳤고요."

그는 "그런데 어느 날 한 대선배께서 '6개월 정도 출연 섭외가 안 오면 불안하다'고 하시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불안감은 저 나이, 저 위치가 돼도 여전하게 느끼는 직업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제야 그렇다면 그런 부담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솔약국집 아들들'의 제작발표회에서 조정선 작가는 유선에게 복실 역을 맡긴 것에 대해 "배우는 자신의 이미지를 깨트려줄 작가를 만났을 때,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배우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때 기쁨을 느끼게 된다"며 "복실이는 유선 씨가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유선은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역을 만나기를 바랐고, 그것을 통해 내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복실이가 그런 기회가 되면 좋겠다"며 웃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