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은 주식회사의 이사들에게 경업(競業)금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제397조).회사의 이익과 충돌하는 업무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충실의무(제382조의3)라는 것도 있어서 회사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이나 특정 주주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위법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제도들은 모두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사가 자신이나 특정인의 이익이 아니라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정신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런 조항들이 없더라도 이사가 주주 전체의 이익,또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고 이사가 자신의 사적 이익이나 특정한 일부 주주의 이익만을 추구한 나머지 전체 주주의 이익을 해친다면 염치 없는 일이다.

불행히도 그런 법을 제정한 국회의원들은 늘 그런 염치없는 행동을 하곤 한다. 자신들의 행동이 염치없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면서.29일 치른 재보선에서의 공약만 봐도 그렇다. 후보자들의 공약은 온통 중앙정부의 예산을 받아와서 지역을 잘 살게 하겠다는 내용 일색이었다.

그 점에서는 여야간 차이도 없다. 서로 자기가 더 힘이 세니까 중앙예산을 더 잘 따올 수 있다고 떠벌린다. GM대우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생각해 보라.거기에 쓰일 돈은 지역구의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전 국민이 낸 세금이다. 전 국민의 피 땀이 서린 세금을 그렇게 함부로 한 선거구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써도 된다는 말인가. 다른 지역개발 공약들도 대개는 그런 성격이다. 자기가 국회의원이 되면 중앙정부로부터 개발에 관한 인허가를 받아내고,또 필요한 재원도 받아올 수 있다고 호언장담들이다.

원칙을 따지고 들어가면 이런 것들은 지방의원 · 시장 · 도지사의 공약으로나 어울릴 만한 것이다. 나라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될 국회의원 후보자의 공약이라면 적어도 핵 문제 및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한 · 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무엇이며,현 정부의 재정 팽창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견해가 담겨야 한다. 국가의 대표자인 만큼 모든 지역에 영향이 고루 미치는 정책을 다뤄야 한다는 말이다. 중앙정부로부터 돈을 받아오겠다든가 인허가를 받아주겠다는 공약들은 자기 지역의 이익만을 추구한 소치다.

대통령이 특정 지역의 이익에만 집착한다면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의심해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국회의원도 다를 바가 없다. 국회는 대한민국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을 집행하는 사람이니 최소한 형식상으로는 국회가 대통령보다 높은 위치다. 그런 국회의원이 저마다 자기 출신 지역의 이익만을 챙기는 상황에서 바른 법률이 제정되고,적정한 예산 심의가 이뤄지길 기대하기 힘들다.

국회의원들의 이 같은 염치 없는 행태는 선거 방식에서 비롯된다. 지역 단위의 선거구별로 대표자를 뽑기 때문에 지역 유권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자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정치가 국가 전체의 이익은 나몰라라 한 채 자기 지역구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국회의원도 대통령을 뽑듯 전국단위의 투표 방식으로 전환해가는 것을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생기겠지만 지금처럼 국가 대사보다는 지역의 이익에 집착하는 병폐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 뿐더러 된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제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다. 제발 염치를 가지고,선거구민의 이익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