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는 제가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먹여드린 음식입니다. 다쳐서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어머니가 너무도 걱정스러워 산딸기를 대신 씹어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

탤런트 이영애를 일약 한류스타로 만든 드라마 '대장금'의 한 대목이다. 대장금은 산딸기를 꼬챙이에 꿰어 구운 산적이 왜 최고의 음식인지를 묻는 중종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이어 "미천한 것을 먹고도 미소로 화답해 주셨던 제 어머니처럼 만백성을 굽어 살펴달라"고 간언한다.

대장금의 이야기에 감동한 중종은 "산딸기는 내게도 최고의 음식"이라며 "홀로 남아 어찌 살아갈까 노심초사했을 어머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정사를 펼치겠다"고 답한다. '대장금'의 얼굴로 퍼져나간 한류(韓流)는 기실 '산딸기 산적'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시청자의 공명을 울렸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마요르광장 옆 골목엔 '보틴(Botin)'이라는 허름한 레스토랑이 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있는 이 식당은 대문호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스토리를 업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다. 독일의 중세도시 하이델베르크 거리의 한 귀퉁이에 있는 주점 '줌 로텐 오셴'엔 늘 손님이 몰린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촬영지라는 족보가 고성을 찾는 관광객의 구미를 당기기 때문이다.

명소(名所)나 명품음식은 이처럼 스토리라는 '옷'을 입으면서 최고로 거듭났다. 실제 외식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스토리텔링의 덕을 본 케이스가 수두룩하다.

●할리우드가 만든 '스시 산업'

스시(초밥) 요리사 마쓰히사 노부유키는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일본인 중 한 명이다. 노부유키는 198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노부' 체인점을 시작해 밀라노 상하이 등 10여개 도시로 사업을 확장했다. 노부유키가 '로닌'(浪人 · 방랑하는 사무라이)에서 '다이묘'(大名 · 대영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맛있는 요리만이 아니었다.

그의 무기는 '퓨전 일식'이었다. 가자미에 뜨거운 기름을 부은 '뉴 스타일 사시미'가 대표적인 히트작이다. 겉은 뜨겁게 익고 속은 차면서 쫄깃한 퓨전 요리는 날생선의 비린 맛을 싫어하는 서양인들의 입맛을 금세 사로잡았다.

스토리텔링 전략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명사들과 사업을 같이하는 방법을 썼다. 뉴욕점은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드니로,밀라노점은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시카고점은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과 함께 했다. 할리우드 스타들과 쌓은 친분으로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스토리는 이미지를 낳았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능숙한 젓가락질로 노부 스시를 먹는 장면이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일식=상류층'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식객'과 '미스터 초밥왕'의 힘

1939년에 문을 연 서울 을지로의 한 곰탕집은 인기 만화가 허영만의 대표작 《식객》 덕에 인터넷 포스팅 1~2위를 다투는 식당으로 발돋움했다.

36,2,0,60이란 네 개의 숫자가 식객 곰탕집 스토리의 핵심이다. 36개월 이하의 소를 사용하고,기름을 두 번 걷어내고,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지막 60은 이 가계 연륜으로 60년이 넘은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곰탕집 외에도 식객의 덕을 본 음식점은 수두룩하다. 만화에 소개된 집들이 앞다퉈 내거는 현수막은 '허영만의 식객이 다녀간 집'이다.

스토리가 외식업의 지도를 바꾼 사례도 있다. 2000년을 전후해 프랜차이즈형 회전초밥집이 인기를 끌었다. 배경이 된 것은 한 권의 만화였다. 다이스케 데라사와의 《미스터 초밥왕》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요리사 가네다 쇼타로의 이야기에 매료된 젊은 고객들이 앞다퉈 초밥을 찾으면서 초밥의 저변이 넓어졌다.

스토리에 기대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소박한 뒷골목 음식점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낙원동 아구찜 골목에서는 혹부리 할머니 얘기로 손님을 모은다. 마산 오동동에서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아구를 된장과 고추장,마늘,파 등을 섞어 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는 게 이야기의 전말이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극 중 이미지를 활용,외식사업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홍콩 영화배우 성룡이 만든 딤섬 전문점 '젝키스 키친'이 유명하다. 세간에 '400억 프로젝트'로 알려진 한류스타 배용준의 한식당 체인 사업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최근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 주요 국가에 문화와 이야기를 접목한 한국 궁중요리 전문점 '고시레'를 만드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400억원은 그가 계획하고 있는 연간 매출 목표다.

●서호에서 '동파육'을 찾는 이유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관광상품이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만든 돼지고기 요리 동파육은 중국 항저우의 명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서호를 둘러본 관광객의 대부분이 이 음식을 찾는다. 관광객들을 끌어들인 것은 소동파에 얽힌 고사다.

그는 항저우 태수를 지내면서 서호 치수를 위해 고생한 백성들에게 동파육을 나눠준다. 소동파가 지은 동파육 관련 시도 관광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질 좋은 돼지고기는 아주 싼값이지만 잘 사는 사람은 먹으려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삶지를 못하는구나. 물을 적게 넣고 약한 불로 삶으면,다 익고 나서 스스로 제 맛이 나누나. '

●일본이 한식 메뉴로 떼돈 버는데…

한국은 외식산업에 스토리를 접목시키거나 음식을 문화코드로 만들어내는 데 미숙하다.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호텔에서도 제대로 된 한식당을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야기와 문화의 빈곤 때문이다.

우리가 멈칫하는 사이에 한국 음식은 일본 음식의 탈을 쓰고 세계로 팔리고 있다. 일본 외식업체인 레인즈인터내셔널은 가루비(갈비),비빔바(비빔밥),구파(국밥) 등의 한식 메뉴를 판매하는 글로벌 음식점 체인인 '규카쿠(牛角)'를 통해 매년 2조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식이 가지고 있는 '웰빙'의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전파한 것이 성공 비결이다.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 '한식 세계화 2009 국제심포지엄' 브리핑에서 "한식 국제화를 위해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은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가 더해진 음식은 맛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