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80-90년대 렉서스 신화 재현 야심

불황기에 소형차 시장이 커지는 것은 상식이지만 의외로 고급차는 틈새시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본 도요타 렉서스가 1980년대 후반 불경기에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높이며 정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금융위기로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불황이 심화되는 상황은 고급차 시장에서 후발 업체가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렉서스의 교훈 = 실제로 1989∼1991년 미국 경제 침체기에 고급차 시장에서 벤츠 S클래스와 BMW7 시리즈의 판매 비중은 52%에서 30%로, 22%에서 9%로 각각 감소한 반면 그보다 낮은 가격대의 렉서스 LS시리즈는 24%에서 60%까지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이번 경제위기에서도 나타나 렉서스 LS는 지난해 3분기 고급차 시장 점유율 35%에서 올해 1분기에는 42%로 늘어났다는 것.
연구소는 "불황기에는 최상위 고급차 비중이 감소하고 중하위 고급차 비중이 증가한다"며 이는 브랜드 이미지 중심의 고급차 시장 고유의 높은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후발 주자에게도 시장 진출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후반 렉서스는 합리적 가격과 낮은 유지비용, 차별화된 서비스, 공격적인 마케팅 투자로 성공신화를 일궈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당시 산업수요가 20% 이상 감소하고 GM과 포드는 100만대씩 판매가 감소했지만 도요타는 판매대수가 7만여대 증가했다.

◇ 현대차 제네시스.에쿠스로 승부한다 = 현대차는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 소형차 시장 공략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내심으론 동시에 제네시스와 에쿠스로 고급차 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다.

30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제네시스는 지난 3월 미국 시장에서 1천626대를 팔아 작년 6월 판매 개시 이후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1월에는 1천56대, 2월에는 1천263대를 팔아 꾸준한 증가추세를 나타냈다.

제네시스가 속한 중급 럭셔리 세단 시장 수요가 지난 1분기 28.2% 감소했고 경쟁차종인 아우디 A6가 40.5%, BMW 5시리즈는 9.8%, 벤츠 E클래스는 31.7% 줄어든 것으로 볼 때 제네시스의 선전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제네시스는 올 1분기 미국에서 총 3천945대를 팔아, BMW 5시리즈(9천827대), 렉서스 ES(8천771대), 벤츠 E클래스(5천850대), 링컨 MKS(4천597대)에 이어 중급 럭셔리 세단 시장에서 5위에 랭크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제네시스 판매 호조는 지난 1월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되고, 슈퍼볼과 아카데미 시상식 광고, 어슈어런스 프로그램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국내에서만 판매되고 있지만 신형 에쿠스도 제네시스와 함께 해외 고급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주역으로 기대되고 있다.

에쿠스는 지난 1월 출시된 뒤 지금까지 계약대수가 6천대를 넘어섰으며, 여름에는 중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중국의 고급 대형차 시장은 아직 약 4% 정도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점점 확대되고 있어 다른 지역 진출에 앞서 시험무대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현재 에쿠스의 미국 및 유럽시장 투입 여부를 검토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가 불황기 미국 고급차 시장을 장악한 렉서스의 선례를 따라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fai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