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은 해방 전후 서울 낙원동에서 스무 평 남짓의 서점 '마리서사'를 운영했다. 앙드레 브르통,장 콕토 등 여러 문인들의 작품과 문예지,화집 등을 갖춰 놓은 덕에 김광균 김기림 오장환 정지용 김광주 등 시인 · 소설가들이 자주 찾았다. 작은 서점이지만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 문학을 실험하고 예술을 논하는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천자칼럼] 동네 서점

로맨틱 코미디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여주인공 맥 라이언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자그마한 서점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명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릴 적 부모 손을 잡고 들렀던 이 서점을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다시 찾곤 한다.

동네서점들은 치열한 '돈벌이의 현장'에서 한걸음 비켜나 있는 경우가 많다. 꽤 긴 시간 이런 저런 책을 뒤적여도 주인은 눈치를 주지 않는다. 원하는 책을 구해 주고 가끔 서로 말벗이 되기도 한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언제 찾아가도 편안한 곳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책방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게다.

한때 7000곳을 넘었던 동네서점이 지금은 2100여곳으로 줄었다. 인터넷을 통해 편하고 싸게 책을 살 수 있는데다 대형서점들의 물량공세에 밀린 결과다. 어찌 보면 경쟁에서 탈락한 것이지만 그와 함께 여유와 낭만까지 사라진다는 게 문제다.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동네서점들이 문화부와 한국서점연합회의 도움으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문 사회 자연과학 신간을 고루 갖춰 놓는 것은 물론 독서와 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주민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저자 초청 강연과 작품 낭독회,어린이 책 읽기 대회 등을 정기적으로 연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서울 성동구 '도원문고'와 울산 남구 '도담도담 책놀이터'등은 이미 '모델서점'으로 선정돼 시범 운영중이다.

부모가 자식들 손을 잡고 대를 이어 찾는 책방이 있다면 삶은 한층 풍요로워질 게 틀림없다. 시대의 물결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동네서점만은 예외가 되기를 바라는 이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동네서점들이 책과 이야기와 추억이 가득한 지역 문화명소로 자리잡아 가기를 기대해 본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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