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가장 무서운 말은 뭘까요? 외환위기 때 방영된 광고 멘트 중 잊혀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이젠 나오지 마,힘들 텐데." 환경미화원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입니다. 정확한 멘트는 "이젠 따라나오지 마,공부하기도 힘들 텐데"입니다. 그런데 당시 실직 공포에 떨던 직장인에겐 "나오지 마"란 말만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직장 동료에게 농담삼아 "나오지 마,힘들 텐데"라고 말하면 뒤집어졌죠.

세계적인 불황으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0% 감원도 '일상다반사'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고가 흔하진 않지만 회사가 벼랑 끝으로 몰리면 쫓겨나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가장 손쉬운 비용절감 방안이 감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텐데,보안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최근 이를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보안 업체인 미국 시만텍과 정보관리 연구 기업인 포네먼 인스티튜트가 지난 1월 실직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놀랍게도 59%가 퇴직할 때 고객명단과 같은 회사 정보를 가지고 나왔다고 시인했습니다. 가지고 나오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회사에 대해 불만을 품고 떠나는 퇴직자가 위험합니다. 회사 정보를 가지고 나왔다고 답변한 사람 중 61%는 전 고용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나간 정보는 고객 이메일 리스트,종업원 기록,접촉자 명단(contact list) 등입니다.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회사 기밀을 빼가기도 쉬워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문서를 통째로 들고 나오거나 복사해야 했습니다. 문서를 통째로 들고 나오면 들통날 가능성이 크고,복사하다가 들키면 망신당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보다 손쉬운 수단이 많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CD나 DVD에 담아 가지고 나왔다는 사람이 53%로 가장 많았고,USB(42%)와 이메일(38%)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단속을 제대로 안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회사 기밀을 가지고 나왔다고 응답한 퇴직자 중 82%는 회사 측에서 정기 점검이나 단속 등 이렇다 할 보안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애사심이 식은 순간 회사 기밀을 차곡차곡 빼내 나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퇴직자가 경쟁사로 가서 몰래 '친정'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면 어떨까요? 비용을 줄이려고 감원했던 회사로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조사에서 회사 기밀을 빼갔다는 응답자의 24%는 '친정' 네트워크에 접속했다고 답변했답니다. 퇴직자 관리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주요 사무기기가 노트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퇴사를 염두에 둔 사람이 노트북을 집에 가져가 기밀 자료를 빼놓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포네먼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멕시코 브라질 등 5개 국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다른 조사에 따르면 주요 사무기기로 노트북을 사용하는 직장인 비율이 23~33%나 되고 5년 안에 55~65%로 높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퇴직자에 의해 회사 기밀이 술술 빠져나간다는 시만텍-포네먼의 이번 조사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10년 새 정보기술이 매우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50대나 60대 경영진은 퇴직자에 의한 기밀 유출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임직원이 퇴직할 때 회사 기밀을 빼가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사 결과를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최고경영자가 보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야겠죠.보안 담당 부서에서는 퇴직자 관리 지침을 강화해 철저히 점검해야 할 테고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젠 나오지 마,힘들 텐데"란 말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겠죠.이상적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