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로켓발사에 이어 개성공단 '특혜'재검토,폐연료봉 재처리까지 초강수를 두고 있다. 북한이 도대체 왜 이럴까. 김일성 사후의 북한을 둘러싼 이해 못할 괴(怪)현상이 있다.

첫째,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관련국들은 6자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시간을 끈다. 둘째, 핵개발 당사자가 핵보유 사실을 확인도 부정도 않는 것(NCND)이 상식이나,북한 스스로는 핵무기를 가졌다는데도 주변국이 NCND의 입장을 고수한다. 마지막으로 개성공단 문제이다. 경제특구는 자본과 기술을 획득하려는 유치국이 노심초사해야 하는데,개성공단의 경우에는 돈줄을 쥐고 있는 투자자가 덜미를 잡혔다.

괴현상들을 연결할 수 있는 논리의 고리는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북한 문제라는 큰 게임의 참가자들이 명분과는 별도의 실제 목표를 암암리에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은 둘 사이의 협력 틀은 유지하면서도 상대의 영향력 확산을 견제한다. 한반도에 대한 미 · 중간 영향력 경쟁 과정에서 북한 이슈는 중요한 협상수단이다. 이들에게는 '게임의 판'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북한의 수를 미리 읽고 판을 엎어버리는 것보다 국익 확보에 유리하다. '핵의 딜레마' 속에서 남한의 대북 행보를 조율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북한도 속셈이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동안 남북관계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과 동떨어진 개성공단 그림만 그려온 것은 아닐까. 지난 21일 북측의 '제도적 특혜'의 전면적 재검토 통보 의도에 대해 개성공단 폐쇄 수순이냐 실리추구 전술이냐 설왕설래하는 것도 자중지란(自中之亂)일 수 있다. 남한을 뜻대로 조정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굳이 조급하게 폐쇄를 결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실리에 눈독 들이면서 투자유치의 초보인 계약 존중이나 상호 신뢰를 내팽개치는 것도 어색하다. 보다 자연스런 논리적 설명은 김정일 권력 승계와 체제 유지 문제로 긴장해 있는 북한 내부의 정치 상황이다.

김정일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2008년 여름 이후 북한은 권력승계의 불안정기에 진입했다. 이달 초에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에서는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이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돼 2인자로서의 입지를 굳힌 것으로 평가된다. 폐쇄된 사회주의 체제아래 권력 승계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이념 논쟁이며,사상적 검증이 잠재적 도전자들 간의 권력투쟁에서 안전판 역할을 한다. 중국식으로 보면,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자(資)씨'인지,아니면 사회주의에 충실한 '사(社)씨'인지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먼 북한 실세들이 체제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을 '남한 조종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사상적 도전에 대응하기에 유리하다. 김정일의 결정으로 시작된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고도 정치적 위험부담을 덜 수 있는 묘책으로 내놓은 것이 지난해 여름 이후 계속된 개성공단에 대한 압박이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과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 군부의 거센 입김,현대아산 직원의 억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 개성공단 문제를 정부차원의 임금협상이나 토지 재계약으로 해결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다. 북한이 스스로 던져버린 신뢰가 '언제든지 무효화될 수 있는' 재계약서 한 장으로 되돌아 올 수는 없다. 시장의 원칙이 지켜질 수 없는 개성공단 사업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 기업을 볼모로 잡히는 격이다.

이제 우리 정부는 아쉽지만 개성공단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위험과 수익에 대한 기업차원의 판단이 개성공단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만이 북한의 정상적 판단을 유도할 수 있다. 멀리 보고 버려야 개성공단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