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 1부(부장판사 김정학)는 이주성 전 국세청장에게 유죄와 함께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달 최종공판에서 검찰 구형량이 징역 7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형량이지만 이 전 청장의 부인에도 불구, 거의 모든 범죄사실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다는 점에서 전직 국세청장 명단에서 또 한번 빨간 줄을 긋는 오욕의 사례로 남게 됐다.

법원이 인정한 이 전 청장의 범죄는 크게 3가지 혐의로 구분된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알선수재와 뇌물죄, 그리고 차명등기에 따른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이 전 청장은 부산지방국세청장시절이던 지난 2002년 종합건설업체인 진양건설의 대표인 기세도씨를 알게 됐고, 이후 국세청 기획관리관, 국세청 차장, 국세청장으로 근무하면서 친분을 쌓아갔다.

기업의 세무조사 권한을 가진 국세청장이 기업인과 사적인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골프를 치는 등의 관계를 갖는 것은 어느 누가 봐도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기씨를 통해 소개받은 프라임그룹 회장 백종헌씨와의 만남이다.

프라임그룹은 2005년 대우건설 매각 당시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으로 백 회장은 누구보다도 대우건설 인수가 간절한 상황이었고, 국세청장이라는 권력자를 사석에서 자주 만난 사실은 의혹을 낳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

특히 이번 재판과정에서 백 회장을 비롯해 다수의 증인들의 입에서 이 전 청장과 백 회장간의 부적절한 만남과 그 중간에서 기씨의 역할이 확인됐다.

세 사람은 종종 골프를 즐겼고, 강남의 C모 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했으며, 2차로 주점도 심심찮게 드나들었던 것으로 증인들은 진술했다.

□ 받았다가 돌려준 20억원짜리 아파트=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청장을 극진하게 대우했던 기씨는 2006년 2월 중순경 백종헌 회장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시가 20억원 상당의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의 삼익아파트를 구입해 줬다.

물론 이 전청장의 명의로 하면 뒤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전 청장과 기씨가 잘 알고 지내던 S모 대기업 간부 허 모씨로부터 차명을 받아 등기했다.

백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 이 전 청장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고 했고, 인수전이 마무리 단계이던 시점에 기씨가 중간에서 이 전 청장에게 이른바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선물' 해주자는 의견을 백 회장에게 전했다.

증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 전 청장은 "다른 장관들은 대통령이 어려워서 말도 함부로 못하지만 나는 매주 주례보고도 하고 독대도 한다"며 당시 공공연하게 자신의 힘을 강조했다.

때문에 백 회장은 선물을 해주자는 기씨의 요구에 선뜻 계열사인 프라임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가라고 했고, 기씨는 "시집간 딸을 가까이에 두고 살고싶다"는 이 전 청장의 요구에 따라 20억짜리 청담동 삼익아파트를 구입해줬다.

검찰은 이 20억원을 대우건설인수를 위한 백 회장과 중간자 역할을 한 기씨의 뇌물로 판단했다.

이 전 청장이 이미 아파트는 돌려줬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대로 이미 대가성이 인정된 뇌물로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 부동산 실권리자 등기법 위반= 법원이 인정한 이 전 청장의 범죄사실 중 가장 큰 부분인 아파트 수수는 사실 사실확인이 어려웠을 부분이다. 본인명의로 돼 있지 않았기 때문.

이 전 청장에게 청담동 삼익아파트를 건넨 기씨는 '이주성'의 명의가 아닌 S모 대기업 간부 허 某씨로부터 받은 이某(허씨의 처남)씨의 명의로 차명등기했다.

허씨는 법정 진술에서 "이주성 청장이 기세도가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거기에 명의가 필요하니 기 사장과 알아서 논의해서 해달라고 했다"며 "기세도는 이 청장의 딸이 결혼해서 살집을 찾는다고 내 앞으로 명의를 하나 마련해 달라고 했지만 나도 대기업 임원이라 처가쪽에 알아보겠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허씨 역시 이 전 청장과 막역하게 지낸 사이로, 명의를 빌려달라는 이 전 청장의 요구에 본인 것을 사용하기는 어려워서 본인 처남인 이씨의 명의를 빌려준 것.

이 전 청장과는 지난 1995년경 고향모임에서부터 10년 넘게 알고 지낸 허씨가 이 전 청장에게 명의를 빌려준 적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2003년 10월경 이 전 청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소재한 선릉역 롯데골드로즈 오피스텔을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을 때 허씨는 본인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줬다.

이 역시 이 전 청장의 요구때문이었다고 허씨는 법정에서 털어놨다.

□ 고급 오디오와 가구세트를 받다= 지난해 11월, 이 전 청장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구속되면서 국세청장 출신인 그를 가장 초라하게 만들었던 문제의 '뇌물'은 바로 오디오와 가구들이다. 이들 물건은 이른바 강남의 있는집 사람들만 사용한다는 외국 브랜드 제품이다.

2005년 3월, 이 전 청장이 이사온 삼성동 아이파크에 배달된 미제 E 브랜드 식탁세트는 1000만원, 같은 브랜드의 쇼파세트는 800만원짜리이며, 덴마크제 B 브랜드의 오디오 세트는 2800여만원 상당의 매니아 급 오디오이다.

이 전 청장은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기씨가 집에 가져다 놓았고, 이 전 청장의 부인 최某씨가 그냥 선물 정도로만 여겨 받았고, 다음에 기씨의 집안에 일이 있으면 답례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고의성을 부인했다.

특히 오디오는 사용하지도 않고, 방치해 뒀기 때문에 사용수익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러나 검찰조사와 재판과정에서 나온 증인진술에서는 이 전 청장과 부인 최씨가 직접 압구정동의 한 백화점에서 가구와 오디오의 브랜드까지 콕 찍어 기씨에게 알려준 사실이 확인됐다.

□ 대납시킨 명절선물 값= 이 전 청장은 국세청 차장과 청장 재임시절인 지난 2005년 2월 설과, 2005년 9월 추석, 2006년 1월 설 명절 등 모두 세차례에 걸쳐 지인들에게 굴비 등을 선물로 돌렸는데, 그 비용은 기씨가 부담해야했다.

이 전 청장은 이 중 1, 2회째 선물비용의 대납부분은 기씨에게 차후 변제할 것을 전제로 했고, 실제로 선물비용을 변재했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기씨가 일관되게 변제 받은 바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이 전 청장이 기씨로부터 대납하게 한 명절 선물비용은 2005년 2월 345만원, 2005년 9월 270만원, 2006년 1월 345만원 등 모두 960만원이다.

재판부는 "이주성이 2005년부터 국세청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설날, 추석 등 명절이 올 때마다 연속하여 지인들의 명단을 기세도에게 줘 선물을 대신 보내게 한 점은 체화된 도덕성 마비를 보여주고 있다"며 특히 "만약 퇴임하지 않고 국세청장에 계속 있었다면 (선물대납도) 계속됐을 것"이라고 엄벌이 마땅함을 강조했다.

□ 국세청장으로의 공로는 '정상참작'= 당초 검찰은 이 전 청장에게 징역 7년형의 중형을 구형했다.

국세청장이라는 세정업무의 최고책임자가 직무와 관련 있는 기업인들에게 뇌물을 수수한 점이 인정되며 직위를 이용해 재벌 회장과 유흥주점을 드나들고, 골프를 친 사실만으로도 공직문란 행위이자 비난의 대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전 청장이 "이제껏 벌금이나 전과 등이 없이살아왔고, 뇌물로 받은 아파트를 이미 반환했으며, 30여년간 세무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국가에 봉사했고, 국세청장 재직당시에 'OECD 국세청장 회의'를 우리나라에 유치하고, 'G10 국가 조세협의체'를 창설하는 등 세운 공로도 인정해 정상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조세일보 / 이상원 기자 lsw@jose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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