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TV 광고가 살려낸 ‘개고생’ ①
"제작진은 인터넷,IPTV,전화 등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각종 IT 서비스를 한데 묶은 통합 서비스의 이름을 고심하다 '집에서 세상을 요리(Cook)한다'는 느낌을 살린 'QOOK'을 만들었고,이어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자극적인 카피를 생각해 냈다. 하지만 과연 이런 '막말'을 광고에 써도 되는지 고민이었다. 마침 회의 멤버 중 한 명이 퀴즈 프로 '스타 골든벨'에 '표준어 아닐 것 같은 표준어'로 '개고생'이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고,제작진은 일제히 환호를 터뜨렸다."

지난 4월3일 한 신문은 올봄 최대의 유행어로 등장한 '개고생'의 탄생 비화를 이렇게 전했다.

3월 하순부터 TV 전파를 타기 시작한 어느 통신사의 '개고생' 카피는 티저 광고라는 심리적 효과를 등에 업고 삽시간에 언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라져가다시피 하던 우리말 하나를 광고의 힘으로 우리 곁에 살려 낸 셈이다.

'개고생'이란 알려졌듯이 '어려운 일이나 고비가 닥쳐 톡톡히 겪는 고생'을 말한다.

이 말은 나오자마자 사람들 사이에서 "아니,이런 말도 있었나?" "어떻게 이런 비속어가 공중파 TV에 버젓이 나올 수 있지?" 하는 등 많은 화제를 낳았다.

처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말 자체도 생소했을 뿐만 아니라,어감도 자극적이라 비속어일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곧바로 당당히 사전에 올라 있는 표준어인 것이 알려지면서 '개고생'은 위력을 더해 갔다.

이 말은 '고생(苦生)'에 접두사 '개-'가 붙어 만들어진 파생어이다.

고생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해 준다.

'생(生)'과 결합한 생고생은 '하지 않아도 좋은 공연한 고생'이란 뜻이다.

헛고생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고생함,또는 그런 고생'을 말한다.

마음고생은 말 그대로 '마음속으로 겪는 고생'이다.

모두 한 단어이므로 붙여 쓴다.

우리말에서 접두사 '개-'는 생산성이 뛰어난 편이라 많은 파생어를 만들어 우리말 어휘를 풍부하게 해 준다.

'개고생'처럼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말에는 '개망나니,개잡놈' 같은 게 있다.

이 외에도 '개-'는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데도 쓰인다.

'개꿀'(벌통에서 떠 낸,벌집에 들어 있는 상태의 꿀),'개떡'(밀가루를 체에 치고 남은 찌꺼기나 보릿겨 따위를 아무렇게나 반죽해 지어 찐 떡.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개살구'(개살구나무의 열매. 살구보다 맛이 시고 떫다. 못난 사람이나 사물 또는 언짢은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빛 좋은 개살구'라 하면 '겉보기에는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띠고 있지만 맛은 없는 개살구'라는 뜻으로,겉만 그럴 듯하고 실속이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등의 예가 그렇다.

또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개꿈,개나발(사리에 맞지 않는 헛소리나 쓸데없는 소리를 낮잡아 이르는 말. '나발'은 '나팔(喇叭)'이 변한 말이다. '개나발(을) 불다'라고 하면 관용구로 '사리에 맞지 않는 헛소리를 하다'라는 뜻이다. '그 친구 개나발 불고 다니더니 크게 혼났군'처럼 쓴다),개소리(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개수작,개죽음 같은 게 있다.

이런 말들은 모두 접두사 '개-'가 붙어 만들어진 파생어인 데 비해 개구멍이나 개차반,개헤엄,개싸움 같은 말은 똑같이 '개-'가 붙었어도 결합 구성이 다르다.

여기에 붙은 '개-'는 형태만 같을 뿐 접두사 '개-'와는 다른 말이다.

이들은 모두 '개(犬)'와 또 다른 단어 간의 결합인데,이렇게 단어와 단어가 어울려 만들어진 새 말을 파생어와 구별해 합성어라 한다.

파생어를 만드는 접두사 '개-'는 가축으로서의 '개(犬)'인지가 불분명해 한글로만 쓴다.

이 가운데 '개차반'은 흔히 쓰는 말이긴 하지만 정확한 뜻을 알고 나면 꽤 심한 욕이 될 수도 있으므로 함부로 쓸 일은 아니다.

'개차반'은 글자 그대로 풀면 개가 먹는 음식,즉 똥이라는 뜻이다.

'차반'은 음식을 가리키던 옛말이다.

여기서 의미가 수사학적으로 전이돼 언행이 몹시 더러운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됐다.

'그는 성질이 개차반이어서 모두 가까이하기를 꺼린다'처럼 쓰인다.

☞ 다음호에 계속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