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에서 고객은 다양한 시각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미래학자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결합한 신조어인 프로슈머(prosumer)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산업화를 지나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고객이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제품 개발과 확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십수년간 첨단기술업체와 씨름한 저자는 '캐즘(chasm) 마케팅'이라는 책을 통해 현장 경험에서 발견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제시했다.

우선 마케터들은 아직 시장에서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먼저 구입하고,사용 경험을 전파함으로써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는 고객에게 관심을 갖는다.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라고 불리는 이들은 제품을 한번 써 보고 호기심 충족 차원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앞서 터득한 정보를 인터넷 등을 통해 타인과 적극 공유한다.

그들에게 소비는 단지 소유의 의미가 아니라 재미이자 자아 표출인 셈이다. 예컨대 애플과 닌텐도가 새로운 아이팟이나 게임기를 출시했을 때 밤새워 줄서서 신제품을 구입하고,써보고,평가하는 사람들이 바로 얼리어답터다.

마케터가 이들에게 높은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얼리어답터를 잘 만족시켜야만 입소문을 타고 신제품을 시장에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첨단산업의 경영자들은 얼리어답터로 구성된 초기 시장의 성공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 실험정신이 강한 얼리어답터로 구성된 초기시장과 극히 보수적이고 실용적인 고객들로 이뤄진 주류시장 사이에는 기업이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거대한 단절,즉 캐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캐즘은 첨단산업의 기업들이 주류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할 때 겪게 되는 큰 난관을 의미한다. 또한 얼리어답터들을 만족시켜도 주류시장 공략에 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저자의 조언에 따르면 캐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류시장에 직접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 위해 목표 시장을 선정하고 이를 집중 공략함으로써 주류시장에서 충성고객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주류시장 고객들은 첨단 기능보다 검증된 품질과 안정적인 애프터서비스를 포함한 완전한 제품을 원한다.

프로슈머,얼리어답터,캐즘 등은 모두 수동적인 구매자에 불과했던 고객이 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로 변모했음을 잘 나타내준다.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