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B형간염치료제 '레보비르'의 임상시험이 중단된 가운데 부광약품이 '자발적 판매중단'이라는 유례없이 강력한 조치를 취한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 8천명의 환자들로서도 약물복용을 중단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자발적 판매중단' 왜? = 부광약품의 미국 파트너인 파마셋은 20일(미국 현지시간) 근육 무력 등 근육 관련 부작용을 이유로 임상시험을 자발적으로 중단키로 했다고 밝혔다.

부광약품에 따르면 미국 현지 임상시험에서 레보비르를 48주 이상 복용한 환자 140명 가운데 7-9명에서 경증(mild)의 근육 병증이 발생했다.

또 국내에서는 지난 2006년 시판허가를 받은 이후 이달 중순까지 20건의 근무력증이 공식 보고됐으며 비공식적인 사례를 포함할 경우 60여건에 이른다고 회사는 전했다.

그러나 레보비르와 같은 '뉴클레오사이드' 계열의 약물은 대체로 근육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최근 유럽간학회가 치료약물로 권고한 '세비보'(성분명: 텔비부딘) 역시 근육 부작용이 5%가량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는 비슷한 다른 약물에 비해 근육 부작용 발생이 월등하게 더 많다는 보고가 없는 데도 부광약품이 판매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데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부광약품은 이에 대해 "레보비르의 근육 관련 이상반응 발생비율은 비슷한 B형간염치료제보다 높지 않았지만 환자의 권익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안전성에 대한 확실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레보비르의 판매를 잠정 중단키로 자체 결정했다"는 답변 외에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지난 3월 국내에서 레보비르의 근육부작용 우려가 제기된 데 이어 한 달 만에 해외에서 임상시험이 중단되자 회사 측이 제품의 '명운'을 걸고 선제 조치를 내린 것 같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식약청은 레보비르의 안전성에 대해 내부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용 중인 환자 어떻게 할까 = 가장 큰 혼란에 빠진 것은 이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이다.

간염 환자들의 커뮤니티인 '간사랑 동우회' 홈페이지에는 잠정 판매중단이 보도되자마자 '저도 (레보비르를) 복용 중인데 어찌해야 하는지' 등 문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B형간염치료제의 경우 갑자기 약을 끊으면 바이러스 수치가 급증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가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바이러스 수치가 잘 조절되던 환자가 약물을 갑자기 바꾸면 도리어 간염이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는 갑자기 약물복용을 중단할 만한 중대한 위험성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불안에 떨 필요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한간학회 양진모 총무이사(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소화기내과)는 "B형간염 항바이러스 제제는 대부분 근육 부작용이 있으며 레보비르의 경우에도 특별히 심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학회에서 판단하고 있다"며 "근무력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약을 끊으면 되돌릴 수 있으므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양 이사는 또 대체 대상으로 지목되는 다른 간염치료제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발암성이 발견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조건부 시판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어떤 약이든 부작용이 있으므로 지나치게 불안해하기 보다는 부작용을 잘 모니터링하면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약물 복용을 임의로 중단하지 말고 의사와 상담한 후 교체 여부와 교체 약물을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판매 재개 가능할까 = 미국 내 임상시험 중단에 대해 개발·판매사인 부광약품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환자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잠정 판매중단 결정을 내렸으나 보건당국이 학회와 함께 철저한 검토를 거쳐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신속하게 내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양진모 간학회 총무이사는 "근육 부작용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심각할 경우 약물을 중단하면 증세가 회복되는 점을 고려할 때 판매중단이라는 조치는 지나친 것 같다"며 "이번 일로 인해 의사-환자 간 불신이 커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식약청과 의료계가 레보비르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면 판매 재개가 의외로 신속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

제약업계는 그러나 판매가 재개되더라도 부광약품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B형간염치료제 경쟁이 치열한 점을 고려할 때 판매가 재개되더라도 처방이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tr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