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 보니 '실버 로봇(Silver Robot:노인을 위한 로봇)' 'R'가 조간신문을 들고 침대 옆에 서 있다. 신문을 읽는 동안 R가 혈압과 혈당 맥박을 체크한다. 혈압이나 혈당이 급변하면 즉시 주치의에게 연락을 하고 약 먹을 시간도 어김없이 알려준다. R는 오늘 일정을 보고한 뒤 아침식사를 준비할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지능로봇사업단의 한 연구원이 그린 '로봇과 함께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로보캅''A.I' 등 SF영화를 통해 다양한 로봇을 봐 온데다 전자 인공지능 등 관련 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로봇이라는 말은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1년 발표한 희곡 'R.U.R'에서 처음 사용됐다. 당시만 해도 상상의 수준이었으나 이젠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섰다. 청소, 잔디 깎기 등 가사를 돕는 로봇은 이미 상용화됐고 자동차나 전자제품 조립,수술 보조,우주 탐사 등의 분야에서는 로봇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개발중인 실버 로봇 '실벗'이다. 음성과 얼굴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문장단위의 음성도 알아듣는 지능형 로봇이다. 3m 거리에서 주인의 목소리를 식별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물체나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기능도 갖췄다고 한다. 실벗은 오는 10월 경남 마산 노인복지관에 투입돼 감정교류 등 실용화를 위한 검증을 거친다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세계 로봇시장 규모는 2007년 160억달러(국제로봇협회)에서 2013년에는 30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우리 정부도 2013년까지 1조원을 투입해 로봇산업 육성에 나선다고 한다. 실버 로봇을 비롯 의료 · 군사 · 소방 · 농업 로봇을 본격적으로 개발해 5년 후에는 4조원의 내수와 10억달러의 수출로 세계시장의 13% 정도를 차지한다는 구상이다.

로봇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데 따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로봇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면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과학자 겸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로봇의 제1원칙'으로 제시한 것도 이 같은 우려의 반영일 것이다. 로봇산업을 키우되 인간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는 방안도 함께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