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순재씨가 말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중학교 은사였다. 광복 후 서울중 김원규 교장 선생님은 바른 교육의 실천자였다. 운동장 휴지를 직접 줍는 등 학교를 거울같이 만들었다. 교장이 그러니 교사들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견뎌 낼 수 없었고 덕분에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다. "

이렇다. 좋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평생 동안 가슴에 남아 삶의 교본을 제시한다. 좋은 선생님은 학교에 가고 싶게 만들고,과목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꿈을 심고,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우며,처지에 상관 없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고,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갖고 살도록 만든다.

반대로 나쁜 선생님은 학교 생활을 엉망으로 만든다. 교사와의 관계가 어긋날 경우 아이들은 학교를 지옥처럼 여기고,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다. 심지어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기성 세대에 대한 반감이 커져 뭐든 삐딱하게 보고 적대적으로 대할 수 있다.

선생님의 힘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들의 중학교 입학을 위해 연초 이사한 지인의 밝은 얼굴을 보면 그렇다. 전셋집이 좁아 짐 정리가 안 된다던 그는 최근 이사하길 잘했다고 털어놨다. 아들이 학교 생활을 즐거워하는데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난 덕 같다는 것이다.

문득 살면서 만난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내게 선생님은 고마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 아이들을 좋은 중학교에 보내려 밤낮 없이 애쓰던 초등학교 선생님,문법에 관한 한 지금껏 큰소리 칠 수 있도록 해 준 중학교 국어 선생님,가난한 제자를 위해 장학금을 주선해 준 고교 때 은사까지.

학부모로 만난 선생님 중에도 잊혀지지 않는 이들이 있다. 아이의 성취감과 자신감을 일깨우려 직장에 다니는 엄마 대신 방학 동안 아이를 연습시켜 시낭송 대회에 내보낸 선생님,작은 성의조차 '마음만 받겠습니다'라며 돌려 보낸 선생님,학년 초 1주일이 안 돼 반아이들 이름을 몽땅 외워서 부른 선생님 등.

그러나 그런 선생님만 만난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놀린다며 하소연해도 들은 체 만 체하던 교사,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건 물론 교과서 내용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던 엉터리 교사,다 큰 고교생들을 다스린다며 툭하면 매를 들던 신참 교사,한창 예민한 고3 반에서 남녀 학생을 짝으로 앉힌 무심한 교사도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학생은 학생이다. 학생은 스펀지이자 콩나물이다. 대부분의 보통 아이들은 교사가 뿌리는 대로 뭐든 빨아들인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들먹일 것도 없이 교사가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치고,가정 형편 · 외모 · 성적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며 따뜻하게 등 두드려 줄 때 아이들은 반듯하게 자란다.

반면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차별하며,못났다고 윽박지르면서 기를 죽일 때 아이들은 학업에서 멀어진다. 넉넉한 가정의 엄친아,엄친딸들은 교사의 관심이 덜해도 크게 상관 없다. 문제는 보통 아이나 뒤지는 아이,못사는 집 아이,왕따당하는 아이들이다. 이들에겐 선생님의 말 한마디,손짓 하나가 절대적이다.

이들에게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로 하여금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게 함으로써 경쟁에서 밀려나게 만드는 일이나 다름없다. 줄 세우지 않겠다지만 세상 어디에 줄 세우지 않는 곳이 있던가. 시험과 평가를 거부하는 교사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아이들을 위해서"라고.영악한 아이들은 여기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말에 혹하는 건 순진하고 가난한 아이들이다. 정말 아이들을 위한다면 공부가 왜 중요한지,건강한 경쟁이 삶을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는지 일러 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내일이 바뀐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 한마디에 기적을 일으킨다. 선생님은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