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녹색'으로 통하고 있다. 정부 정책 가운데 녹색의 이름을 달지 않은 것이 드물고,기업 경영의 키워드도 한결같이 녹색이다. 녹색기업 대출 · 녹색성장 예금 등의 금융 상품,녹색 보험에다 주식 시장에서도 녹색 테마가 아니면 눈길을 끌지 못한다. 다들 녹색을 말하지만,사실 무엇이 진짜 녹색인지 알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우리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면서 일고 있는 녹색 붐이다. 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녹색 뉴딜' 10대 핵심 과제 발표,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마련,녹색성장위원회 출범 등이 속도전으로 이뤄지고 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기업 할 것 없이 '녹색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4년간 녹색 성장에 쏟아 붓겠다는 돈만 50조원에 이른다.

저탄소 · 친환경을 핵심 가치로 삼은 녹색 경제의 실현이야말로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이자 생존 조건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이 세계 9위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 배출을 강제로라도 줄이자는 게 국제 사회의 합의이고 보면 녹색 성장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녹색 산업을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삼는 데 달리 대안이 없고,기업들이 앞다퉈 녹색에 몰입하는 것도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녹색성장 전략이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헷갈리고 불안한 까닭이다. 지금 전국의 '자전거 신드롬'만 해도 그렇다. 자전거가 저탄소와 친환경,에너지 절약을 위한 최고의 녹색 대안으로 각광받자 정부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 종합 대책까지 마련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전거 시장 규모는 연간 250여만대에 이르지만,국내에 자전거 양산업체는 없다. 몇 해 전 삼천리자전거가 중국으로 공장을 옮긴 후 거의 모든 수요를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산업 기반 회복이다. 대덕 연구개발특구에 자전거 클러스터를 조성하고,특구 내 연구기관과의 협력체제 구축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녹색성장의 신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이다.

대덕 특구는 지난 30여년 동안 수십조 원을 쏟아 부어 우리나라 첨단 과학과 기술 개발의 메카로 키워 낸 곳이다. 미래에 대비하고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첨단 기술의 산실이다. 이곳에 자전거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그 조합(組合)이 솔직히 황당하고,자전거를 첨단화한들 성장과 수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신 · 재생에너지 개발도 마찬가지다. 태양광 · 풍력 발전이 녹색 에너지의 우선적 대안인 건 맞다. 문제는 우리 기술과 산업 기반이 취약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 태양광 발전 소재와 부품 수입 의존도는 75%,풍력 시스템의 경우 99% 이상에 이른다. 원천 기술 자립 없이 몇조 원씩 들여 보급을 늘리고 성장동력으로 키운다는 계획은 자칫 이 분야 세계 시장을 장악한 미국 독일 일본에만 좋은 일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경제성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 한전이 일반 가정에 판매하는 전력 요금의 10배나 되는 보조금을 지원해야 채산성이 겨우 맞는다. 이게 녹색 성장의 딜레마다.

그러니 아직 시동도 걸리지 않았는데 벌써 녹색 과열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녹색 성장이 '최고 선'이라는 정책 의지에다 막대한 자금 투입이 이뤄진다. 너도 나도 녹색을 내세워 '눈먼 돈 따먹기' 게임이 된다면 거품은 필연이다. 그 부작용이 나라 경제에 남기는 상처와 후유증은 이미 과거의 벤처 거품으로 절실히 경험한 바다. 중구난방 성장과 따로 노는 녹색을 얘기하는 것은 녹색의 함정을 파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녹색'과 '성장'의 교집합을 제대로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늬만 녹색'으로는 성장도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