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라고,정보기술(IT) 신성장 동력이라고 정부가 손꼽던 융합 서비스들이 하나같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한국형 4세대 이동통신이라는 초고속 무선인터넷 와이브로(Wibro),그리고 인터넷TV(IPTV) 등이 그렇다. DMB는 누적 적자에 시달리고,와이브로는 사업자들이 투자에 나서길 주저하고,IPTV는 서비스 확산이 안 되고 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가.

방송통신위원회가 대책을 내놨다. 와이브로에 대해 전화번호를 이동통신과 동일하게 부여하겠다고 했다. 와이브로를 통해서도 무선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존 이동통신과 경쟁하도록 만들겠다는 얘기다. 또 IPTV 확산을 위해 방송법 개정도 검토하겠다고 한다. 케이블TV 사업자(SO)들이 IPTV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려는 사업자(PP)들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등의 불공정 행위를 막겠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와이브로 사업자 선정 당시 무선인터넷 전화 서비스는 안 된다고 했던 것은 바로 정부(구 정통부)였다. 이제 와 입장을 바꾼 것은 와이브로에 무선 전화를 결합하면 이동통신에 비해 통화 요금과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싸질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그건 정부의 희망일 뿐이다. 와이브로 사업자들이 다름 아닌 이동통신의 1,2위 사업자들이고 보면 이들이 주력 서비스를 무력화할 수 있는 와이브로 투자에 적극 나설 동기는 약해 보인다.

IPTV도 그렇다. 정부가 IPTV와 경쟁 관계에 있는 케이블TV가 어떻게 나올지 예견 못했다면 그것은 차라리 무능한 것이다. 불공정 행위를 정말 막을 의사가 있었다면,방송법은 물론이고 IPTV법에도 SO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PP가 별도 신고 없이도 IPTV에 채널을 공급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융합 서비스들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고됐던 것이다. 융합 서비스 도입이 지연돼 시장 진입의 타이밍을 놓친 것부터가 그렇다. 여기에 장밋빛 시장 예측,사업자 선정 실패,그리고 복잡한 사전 규제 등을 생각하면 시장을 탓할 것도 없이 정책 실패 요인이 더 크다.

혹자는 융합 서비스가 겉돌고 있는 것은 정통부 해체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과 관계를 완전히 호도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융합 서비스는 정통부 시절 나왔던 것이고,시작부터 뒤틀린 부분이 적지 않았다. 방통위가 과거 정통부 역할의 복원을 노리고 있다면 그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방통위가 알아야 할 것은 구 모델(old model)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과거 CDMA 성공 신화에 대한 집착은 하루 빨리 버리는 게 좋다. 지금 기업들은 기술 개발은 스스로 할 테니 정부는 시장 진입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만이라도 확실히 치워 달라고 한다. 그것이 이해관계자 다수가 얽혀 조정이 필요한 융합 서비스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방통위는 시장 주도자가 아니라 시장 조성자로 돌아서야 한다. 기술 개발 콘텐츠 등 진흥 기능은 타 부처에 과감히 맡기고 규제나 이해관계 조정 문제만 확실히 해도 IT 컨트롤 타워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해야 할 역할도 제대로 못하면 방송통신 경쟁 정책을 차라리 공정위에 넘기고 방통위는 해체하는 게 더 낫다는 얘기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