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매슬로의 5단계 욕구설은 개인의 성장과 관련돼 있다. 생리적 욕구,안전의 욕구,사회적 욕구,존경의 욕구를 차례로 충족하고 나면 자아실현의 욕구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그 욕구 수준에 따라 인생의 질도 결정된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한 사람에게 멋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반대로 자아실현을 위해 한마디 말도 조심하는 이에겐 인생의 깊이까지 느낄 수 있다. 사람의 수준은 그러니까 그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기업도 다를 바 없다. 상종하기 싫은 회사도 있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업체도 있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로 기업을 분석한 칩 콘리는 'PEAK'에서 기업에도 3단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목표가 '생존'인 기업이다. 그 다음이 '성공'이 목표인 기업,그리고 최고 단계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회사로 탈바꿈할 수 있는 수준이 목표라는 뜻에서 '변환(transformation)'이라고 보았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안타깝게도 우리 주위엔 수준 낮은 기업만 가득하다. 당장 살아남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하기야 세계적인 업체들조차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현실에서 이 정도의 굴욕이야 참을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업도 어떤 회사가 되고 싶으냐에 그 수준이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어려워도 목표는 높게 잡아야 옳다. 새로운 환경에서 놀라운 적응력을 보일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가 되지 않으면 성장은 지속되지 못한다.

기업이 왜 높은 이상을 추구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업을 둘러싼 이해당사자(stakeholder)들의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다는 데 있다. 기업들은 이제껏 종업원,고객,투자자,파트너,사회 등 이해당사자들이 '낮은' 수준을 원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 이들을 소홀히 했다.

예를 들면 주주들은 오로지 배당만 많이 해주면 좋아할 줄로 알았다. 그러나 주주들은 이제 달라졌다. 배당보다 자신이 투자한 회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나아가 그 회사에 투자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한다. 종업원들의 수준도 높아졌다. 오로지 급여나 복리후생을 따지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인정받고 싶어하고,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사람들은 변했다. 점점 의미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고령사회요,이들이 인터넷으로 묶여 막강한 힘을 발하고 있다. 이제 높은 뜻을 가진 고수 기업의 수준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멋진 고수의 길을 갈 것인가,아니면 살아남은 뒤의 일로 미뤄둘 것인가.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