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에도 세칭 알파걸의 진출이 눈부시다. 올해 전체 연수생 977명 중 무려 380명이 여성이다. 이들은 동호회나 학회 등 각종 행사를 주도하고,새로운 루트를 개척해 중국,프랑스 등지의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수습을 받을 정도로 능동적이다. 틈만 나면 일탈을 꿈꾸는 남성들과는 달리 생활패턴이 일정하기 때문에 학업 성취도도 높다. 하지만 연수원 수료 후 법조계로 진출하면 첩첩산중이다.

우선 배우자를 구하는 일이다. 연수원 수료 후 바로 결혼적령기에 접어들므로 적극적으로 배우자감을 물색해야 하는데,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여유가 없다. 게다가 여판사나 여검사는 능력은 인정받을지 모르나 배우자감으로서는 그다지 인기가 높지 않다.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뒷바라지를 잘 해주길 바라는 현모양처 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탓일까. 사람을 만날 기회도 적고,매일 밀려드는 업무와 씨름하다 보면 5년이 훌쩍 지나가고 어느 덧 골드미스란 꼬리표가 붙는다.

천생배필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더라도 직장과 가정이란 두 마리 토끼가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양쪽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몸이 부서지게 일해보지만,우왕좌왕하다가 죽도 밥도 안 되기 십상이다. 법조인의 일이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아이 양육을 위한 시간제 보모를 구하기도 어렵고,아이를 24시간 맡아주는 육아시설도 찾기 힘들다. 결국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겨 놓고 두집 살림 혹은 세집 살림까지도 하게 된다.

두 가지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했다 할지라도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가정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업무에 전념하는 남자들과의 경쟁은 만만치 않다. 군대란 조직문화를 경험한 남자들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도 이미 한수 위다. 늘 연약한 존재로 배려받는데 익숙한 여성들은 상사,동료,부하직원에 이르는 인간관계를 관리하거나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서툴기만 하다. 가정을 돌봐야 하는 여성들은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어려워 정보와 인맥으로부터 소외되기도 쉽다.

그러나 여성이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따뜻함,섬세함,유연함,청렴함은 늘 타인들 틈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분쟁을 공정하게 해결해야 하는 법조인에게는 큰 장점이다. 과거 남성의 영역이던 법조계에 여성들이 대거 진출함으로써 알파걸의 유리천장은 점차 깨어지겠지만 이제는 양적 성장을 이뤄낸 여성 법조인들이 각 분야에 걸맞은 실력과 능력을 갖춰 질적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다. 또 여성 스스로의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구성원들이 관심을 갖고 육아시설 등의 사회기반 시설을 확충해줘 여성인재의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알파걸이 베타우먼(?)으로 전락하지 않고 명실상부한 알파우먼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