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회사 사장 하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주량일 것이다. 국내 주류업계의 대표적 최고경영자(CEO)인 윤종웅 ㈜진로 사장(59)은 주량이 얼마나 될까. 2007년 진로 사장을 맡기 전 하이트맥주에서 32년간 근무하면서 8년간 사장까지 지낸 그의 맥주 주량은 '마시고 싶은 만큼'이다. 골프 18홀을 돌면서 홀당 한 캔씩 18캔을 마신 적도 있다. 안간힘을 써가며 그와 '보조'를 맞췄던 동반자들은 라운딩 후 골프 클럽을 지팡이 삼아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고 한다.

직장이 술회사인 데다 자리까지 사장이다 보니 그에겐 달력의 빨간 날을 빼고 저녁 술 자리가 없는 날이 없다. 하지만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원칙이 있다. 문상(問喪)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오후 10시 이후 절대 '뉴 이닝'에 들어가지 않는 것.그 이후 마시는 술은 '시간 버리고,돈 버리고,몸 버리게 할 뿐'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신 밤 11시께 잠자리에 들고,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7시 이전에 출근하는 '바른생활'이 몸에 밴 것도 이 같은 그만의 주도(酒道) 덕이다.

30년 이상 술회사 생활에서 그를 꼿꼿하게 지켜준 또 한 가지 비결은 '걷기의 생활화'다. 이를 위해 사장실 한쪽에 늘 검은색 운동화가 놓여 있다. 점심시간에는 양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15분 정도를 걸어 식당에 간다. 주말에는 캐주얼 복장에 운동화를 신고 몇 시간씩 길거리를 '쏘다니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번화가 중심 상권이나 시장통 등을 돌며 현장 분위기를 직접 느끼기 위해서다.

길거리 광고판도 유심히 보고,식당에 혼자 들러 반주 한 잔 하면서 업소 주인이나 종업원들에게 손님들의 음주 취향도 물어본다. 이런 식으로 강남역에서 잠실까지 걸은 적도 있으니 '마니아급 뚜벅이족'이라 할 만하다. 물론 골프를 칠 때도 동반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좀처럼 카트를 타는 법이 없다.

윤 사장은 신장이 178㎝로,그 연배에서는 장신축에 속한다. 학창시절 농구선수를 꿈꾸기도 했다는 그는 요즘도 주말이면 틈틈이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인근 길거리 농구단 멤버로 활약한다. 시쳇말로 '내일 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초로의 신사'가 젊은이들과 어울려 뻘뻘 땀을 흘리며 코트를 누빈 뒤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학군 11기인 그는 국내 대표적인 ROTC 출신 경영인 중 한 사람이다. 1973년 소위로 임관한 그의 동기로는 마라톤 마니아인 고춘홍 ㈜이브자리 사장,대우중공업 사장을 지낸 추호석 파라다이스 사장 등이 있다. 이들과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만나 '전우애'를 이어가고 있다. 윤 사장은 군 생활에서 "돈 내고 배울 것을 공짜로 배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가 '공짜'로 배웠다는 것은 리더십의 원리.

'윤 소위'의 첫 근무지는 '백마부대'로 잘 알려진 육군 9사단 예하부대.당시 베트남에서 막 철수한 그의 소대는 모두 상병 이상의 파월 용사들로만 이뤄졌다.

군 생활에 이골이 난 '노회한' 고참 병사들에게 애를 먹던 신참 소위가 느낀 리더십의 한 단면."부하를 '조질' 때는 훈련실적만을 들이대야지 절대로 개인 감정을 내비쳐선 안 된다. " 그는 교육시간에는 '입에 단내'가 나도록 기합을 주되 자칫 감정이 앞설 수 있는 내무생활 통제에서는 간단한 '취침점호'식으로 최대한 풀어주면서 반감 없이 군기를 잡았다고 한다. 회사 경영에서도 부하 직원들에게 '일' 앞에서만큼은 호랑이처럼 엄한 것도 군 생활의 교훈이다.

윤 사장의 집안은 술 회사와는 거리가 멀다. 부친(84)은 공주 인근에서 30년 가까이 중학교 교장을 지냈고 모친도 20년 이상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전형적인 교육자 집안이다. 윤 사장의 동생 내외 역시 모두 현직 교사이고,그의 부인도 교편을 잡았었다.

윤 사장이 '직업상' 늘 술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원칙'에 충실할 수 있었던 데는 '엄격한'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인 부친의 영향이 컸다. 또 생물학 전공인 부친 덕에 일찌감치 양봉을 배워 이 분야에도 나름대로 조예가 깊다.

윤 사장의 고향은 충남 공주시 의당면으로 마을 가운데 정자를 중심으로 파평 윤씨 집성촌과 청송 심씨 집성촌이 나뉘어져 있다. 청송 심씨 집성촌에서 윤 사장의 마을 형님으로 함께 자란 사람이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다.

또 인근 유구면의 파평 윤씨 집성촌에서 성장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집안 아저씨뻘로,지역 행사와 종친회 등을 통해 자주 모임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10대 역전'의 하나로 꼽히는 하이트의 오비맥주 추월.1990년대 중반 대역전극이 펼쳐질 당시 윤 사장은 하이트의 전신인 조선맥주 영업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빼놓고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쫓기는 입장이 됐다. 두산주류를 인수한 롯데 소주의 파상공세에 직면해 있어서다.

그가 농구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무수하게 인터셉트가 일어나고,상당한 점수차도 곧잘 역전되기 때문이란다. '하이트 신화'의 한 주역인 윤 사장이 '진로 아성'의 수호자 임무를 어떻게 해낼지 주목된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