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일 무역협회장은 지난 2일 끝난 런던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보호무역장벽을 더 이상 만들지 않고 5조달러를 경기부양에 투입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만족하고 있다. G20의 한국 측 기획조정위원장을 맡아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합의 도출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컸다. 하지만 북한의 로켓 발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라는 대형 사건이 터져 G20의 소중한 합의가 뉴스의 초점에서 너무 빨리 사라진 게 못내 아쉬운 듯했다. 고광철 한국경제신문 부국장 겸 경제부장이 지난 9일 무역센터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G20 정상들이 합의한 내용을 기획조정위원장으로서 평가한다면.

"지난해 워싱턴 1차 정상회의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아 각국이 재정지출 확대와 보호무역주의 억제,그리고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금융감독 · 규제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데 합의했다. 런던 정상회의는 1차 회의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 점검을 통해 좀더 구체적인 시책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로 하여금 각국의 재정확대 노력에 대한 분석과 보호무역 저지 여부를 모니터링하자는 데 각국이 합의했다. 외교적 수사(레토릭)가 아닌 구체적인 숫자,실천 가능한 대책을 도출해낸 게 큰 의미가 있다. "

▼의제 설정을 두고 이견도 많았는데.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주로 금융감독 규제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엔 공동의장국인 영국 주도로 정상회의 준비를 위한 4개 실무그룹(위킹그룹)을 만들었는데 모두 금융규제 · 감독개혁만 다루게 짜여졌다. 거시경제나 자유무역 등을 다룰 실무그룹은 하나도 없었다. 전대미문의 금융 · 경제위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정상회의에서 금융감독 규제만 논의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의제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나서서 감독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는 게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1차 회의 때 나온 거시경제 공조,'스탠드스틸'(standstill · 각국이 더 이상의 무역장벽을 만들지 말자는 약속) 등에 대한 후속조치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주장이 의제 선정은 물론 합의문에도 대부분 반영됐다. "

▼공동의장국으로서 각국과의 공조는 어땠나.

"주요국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많이 활용했다. 특히 공동의장국인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의 자문관으로 이번 정상회의를 총괄한 존 컨리프와는 수시로 영상회의와 전화 통화를 하며 긴밀히 협조했다. 미국 측 G20 총괄 책임을 맡은 로렌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폴 볼커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국제경제연구소(PIIE)의 프레드 버그스텐 박사 등과도 수시로 협의했다. "

▼한국의 노력이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외교사에 큰 획을 그은 일이었는데 북한의 로켓 발사에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국제무대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아젠다 세팅(의제 설정)을 한 적이 언제 있었나. 더욱이 G20 정상회의는 일종의 '지구촌 유지모임'이다. 유지모임에 들어간 것도 대단한데 거기서 좌장 역할까지 해낸 것이다. "

▼'스탠드스틸' 등 정상회의 합의 내용이 제대로 이행될지가 관건인 것 같다.

"사실 G20의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각국 정상들이 모여 보호무역을 하지 말자고 정치적으로 합의했고 보호무역 자제에 대한 각국의 이행 여부는 WTO가 모니터링해서 보고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WTO가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나라의 이름을 공개해 부끄럽게 만드는 '네이밍 앤드 쉐이밍'(naming & shaming)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재정 확대 노력도 IMF를 통해 점검하고 미흡할 경우 추가적인 재정 확대 노력을 건의할 수 있게 했다. "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그렇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와 금융안정화위원회(FSB)에 우리나라가 새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BCBS는 BIS 비율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구이고,FSB는 종전 금융안정화포럼(FSF)을 확대 개편한 기구로 글로벌 금융규제 · 감독,금융위기 조기 경보 등의 역할을 하게 된다. 작년 워싱턴 1차 정상회의 때 이들 기구에 신흥시장국을 가입시켜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었는데 한국이 가입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반면에 중국 등 브릭스(BRICs)는 당연히 들어가는 걸로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는 개도국과 선진국의 교량역할을 할 수 있고 외환위기 극복경험을 살려 금융감독 · 규제 마련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워싱턴 1차 회의 때 이 대통령이 '스탠드스틸'을 주장했다. 무역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의 대통령이 앞장서서 자유무역 분위기를 촉진하자고 얘기하니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도 스탠드스틸 합의가 잘 지켜지지 않았으니 이를 다시 원상복구하자고 한 이 대통령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부실채권 정리 경험을 공유하자는 주장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대통령의 창의적이고 참신한 리더십이 1,2차 정상회의의 화두가 될 정도였다. "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향후 경기를 어떻게 전망하나.

"(회복을 점치기에는)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세계 경제만 보면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띈다. 첫째 중국의 경기부양 대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다. 런던에서 열린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도 농촌경제를 살리고 내수진작을 위해 가전제품 구입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으로 민간소비가 늘어나고 있다고 얘기했다. 미국의 경우 당분간 굿 뉴스(좋은 소식)도 있지만 배드 뉴스(나쁜 소식)도 있을 것 같다. 추가 재정지출 효과가 나타나고 주택경기 하락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경기 회복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

▼국내 전자,자동차 기업들의 실적이 호전되는 추세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나.

"고환율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에 취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일본기업들은 엄청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도요타의 경우 올해 손실액의 몇 십배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뒀으면서도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에 적극적이다. 우리 기업들이 깊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

▼무역협회장 취임 이후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취임 직후 직원들에게 무역협회가 왜 존재하는가를 고민하라고 했다. 수출기업이 돈을 잘 벌게 해주고 이를 통해 국가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게 무역협회의 존재가치 아닌가. 그래서 협회의 역할을 두 가지로 정했다. 첫째는 현장 애로사항을 파악해 해당 정부 부서와 관련 기관과 함께 하루속히 해결해주는 것이고,두 번째는 국내 무역업체들의 활동 무대를 넓힐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

▼지방을 돌며 무역업계 간담회도 시작했는데.

"8일 인천,10일 충북 · 대전에 이어 이번 주에도 광주 · 전남,부산 · 창원,대구 · 울산 등지를 방문해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무역업계 사람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지원해줄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앞으로 각 지부에서 현장의 애로사항을 일주일 단위로 보고하면 본부에서는 한 달 단위로 건의사항에 대한 조치 결과를 해당기업에 알려줄 계획이다. 국가경쟁력강화 위원장 때도 그랬듯이 애로사항을 코드로 구분해 진척 상황을 면밀히 체크할 것이다. "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양윤모 기자 yoonm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