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강원도 강릉시 담산동에 있는 동해식품 제조공장.콩과 밀을 찐 후 45일 넘게 숙성시켜 만든 하얀 고추장 원료가 직경 3m가 넘을 듯한 거대한 솥에 한가득 들어간다. 이 원료와 고춧가루가 골고루 섞이자 비로소 고추장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 단계에선 아직 원료의 입자들이 고르지 못하다. 분쇄기 등 가공 공정을 거쳐 10㎏들이 알루미늄 캔 속에 하나씩 포장된다.

고추장,된장,간장,쌈장,춘장 등 10여종의 장류를 생산하고 있는 동해식품은 강원도의 향토 기업으로 '강표'라는 브랜드를 통해 이 지역에 잘 알려져 있다. 고추장과 된장은 각각 연간 1000t,간장은 7000t가량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 중 군납 비중이 40%를 차지하고 강원도 일대에 나가는 물량이 전체의 60%에 이른다.

동해식품은 강원도의 입맛을 대변하는 회사다. 예를 들어 강표 된장은 대기업이 생산하고 있는 된장보다 오래 숙성시켜 색깔이 어둡고 맛도 더 진하다. 강원도 사람들은 장기간 숙성시킨 짙은 빛깔의 된장을 선호하며 대기업이 생산하는 밝은 빛깔의 '전국구 된장'에는 수저를 잘 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해식품은 이처럼 강원도민의 입맛에 맞춘 장류를 생산하고 있어 오래된 단골 고객들이 많다. 지역에서만큼은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한 채 경쟁하고 있다.

동해식품은 1963년 철도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김흥경 회장(83)이 '돈을 한번 벌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강릉장유양조조합이라는 된장회사를 사들이면서 출발했다. 동해시가 고향인 김 회장은 가난했던 부모님의 꿈인 논밭을 사려면 반드시 자기 사업을 해야겠다고 판단,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김 회장은 "어릴 적부터 먹거리가 여의치 않았지만 맛있는 고추장,간장만 있으면 항상 식사 시간이 즐거웠어"라며 "때마침 된장 간장 공장이 매물로 나왔는데 장류는 외국에서 수입할 수 없는 우리나라 전통식품이기 때문에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창업 당시만 해도 간장,된장은 집안에서 직접 담가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가내 수공업 형태를 벗어나 기업의 면모를 갖추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장류업의 특성상 1회 소비량이 적은 탓에 거래처당 납품물량은 소량에 그쳤고 회전율도 낮았다. 김 회장이 직접 자전거와 수레를 이끌고 간장과 된장을 배달해야 할 정도였다.

회사의 본격적인 성장은 1970년 군납 계약을 따 내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국방부는 한국장류협동조합을 통해 수의계약 형식으로 납품업체를 결정했는데 강원도 지역의 유일한 장류 제조업체였던 동해식품도 납품업체로 선정될 수 있었다. 강원도 지역에 군부대가 많은 것 역시 이점이었다. 경쟁 입찰제로 바뀐 현재에도 군에 납품되는 장류의 20%는 동해식품이 생산하고 있다.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한 가운데 1980년대부터 가속화된 핵가족화 추세에 힘입어 장류 소비시장이 크게 확대됐다. 동해식품도 이에 발맞춰 편리하고 위생적인 포장 기술을 도입,다양한 종류의 포장 단위로 상품을 출시해 지역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1986년에는 강릉시 당산동에 3000평 부지를 마련하고 현재의 공장을 건설했다.

1남4녀 중 장남인 김진은 대표(46)가 회사에 합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그는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군복무(학군 25기)를 마친 뒤 대기업에서 7년 동안 품질관리 업무를 담당했었다. 1990년대 들어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동해식품은 고추장 된장 등에 대한 KS마크 획득 준비에 나섰다. 이 시기에 이 분야 전문가인 김 대표가 물밑 지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공장이라면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는 그였지만 식품 제조업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만큼 3년 동안은 공장에서 몸 쓰는 일만 했다. 김 대표는 "사장이라고 해도 원료 생산에서 시작해 배달까지의 모든 과정 중 하나라도 모르면 직원들에게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궂은 일은 무조건 먼저 나서서 했다"며 "새로운 배합 비율을 찾기 위해 고추장 된장을 너무 많이 먹어 항상 혀가 얼얼한 상태로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회사에 자리 잡을 무렵 큰 시련이 찾아온다. 2002년에는 태풍 루사,2003년에는 매미가 영동 지방을 휩쓸고 가면서 공장 전체가 침수되고 사무실은 떠내려가 버렸다. 생산이 전면 중단되고 피해액은 15억원에 달했다. 거래처들도 물건을 받지 못하게 되자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이제 정말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김 회장과 김 대표를 감동시킨 주체는 바로 직원들이었다. 전 직원들이 자진해서 상여금을 모두 반납하고 밤을 새우며 공장 복구에 매달린 결과 한 달 반 만에 공장 가동을 정상화했다. 비 온 뒤 땅이 굳듯이 위기를 극복하자 회장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회사에 강한 애착심을 갖게 됐다.

이후 동해식품은 끈끈한 내부 결속력을 바탕으로 신제품 개발 등에서 성공을 거둔다. 매운탕 소비가 많은 강릉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내놓은 식당용 찌개 고추장이 대표적인 예다. 고추장 특유의 단맛을 제거한 이 제품은 동해안 일대 매운탕 집에서 큰 인기를 끌며 회사의 효자 상품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따로 고추냉이를 풀지 않아도 되는 고추냉이 간장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으며 사상 최대인 45억원의 매출도 달성했다.

김 대표는 "고추장과 된장은 앞으로도 우리나라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식품이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대를 이어 갈 수 있는 사업"이라며 "경쟁이 치열하고 이윤도 낮은 장류업의 특성상 큰돈을 만지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소원이었던 논밭은 이미 마련한 만큼 이만하면 우리 가업도 성공한 것으로 자부한다"고 말했다.

강릉=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