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연아 선수가 세계피겨선수권대회를 제패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우승에 이어 나온 쾌거로 국민들에겐 금융위기의 고단함 속에 희망과 자신감을 주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것은 비단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표산업인 전자,자동차,조선,철강 등에서 관련 업체들이 세계 최고 반열에 올라 있다.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최고 공항으로 선정돼 해외에 운영기술까지 수출하고 있고,우리 항공사들 역시 서비스 면에서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3위,교역규모 세계 9위의 경제강국이 돼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경제규모에 비해 아직 국내 수준에만 머물고 있는 우리 금융산업의 현주소이다.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오히려 그 주범의 하나로 몰리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이 매출의 70~80%를 해외에서 벌어 들이고 있는 데 비해,국내 은행들은 2008년 말 기준 해외 총자산이 전체의 3.7%에 그치고 있고,해외에서 벌어들인 순이익도 3억달러,5.1%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가 교역규모가 우리의 80%밖에 안되는 스페인의 산탄데르,빌바오 두 은행이 지난 한 해 전체 이익의 60~70%인 120억달러를 해외에서 벌어들인 것과 비교하면 국내 은행들의 해외실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스포츠와 제조업 및 기타 서비스업에서 우리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실적을 올리고 있는데 왜 유독 금융업에선 세계수준의 금융회사가 나오지 않는가.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인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이 설립된 지 112년,최초의 해외지점인 조흥은행 도쿄지점이 개설된 지 91년이란 금융역사가 부끄러울 정도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금융업의 세계시장 도전을 외면할 수는 없다. 다행히 지금 우리의 소매금융상품과 서비스 수준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또 우리의 IT기술과 근면,열정을 융합한다면 세계시장으로 우리의 금융영토를 성공적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마침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최근 국내보다는 해외 M&A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건 시의적절한 일이다.

국내 금융업의 효율적인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대통령 직속의 '금융업 해외진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국가전략 차원의 금융업 세계화를 기획,조직,추진해야한다. 현재의 금융위기를 기회 삼아 신속 정확한 해외진출을 위한 전략본부 역을 맡기는 것이다. 과거 대우가 헝가리에,LG가 베트남 · 폴란드은행에,그리고 국민은행이 인도네시아에 투자해 성공했던 경험들을 국가 성장전략차원으로 승격,재추진하자는 것이다.

둘째,외환보유액 중 1차 50억달러 정도를 금융업의 해외진출과 투자에 전략 배정해 앞으로 수년간 금융영토 확장에 전력 집중한다. 현실적으로는 한국투자공사 또는 한국산업은행을 활용해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투자를 지원하고 협조 투자하는 기능을 부여한다.

셋째,금융인들이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그들에게 다시 깃발과 검을 돌려주는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하다 발생한 금융인들의 과거 업무추진상 실수는 일시 사면하고,지금은 해외시장에서 당당하게 실력을 겨뤄 국가발전에 보답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금융회사들도 머지않아 야구,피겨와 같이 세계를 제패하고 삼성,LG전자 수준의 세계적 금융회사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금융업이 국가의 신성장동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