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맞아 은행들이 바빠지고 있다. 가계 기업 할 것 없이 곳곳에서 자금난을 호소하며 은행에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다. 그간 은행권은 이 같은 요구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경기가 좋을 때는 금리우대 등 갖가지 혜택까지 붙여가며 대출을 늘리다가 경기가 얼어붙자 대출을 줄여 경기 위축을 심화시키고 서민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은행들이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의 경제 활성화 정책에 부응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고 영세 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인하했고 그간 은행 대출에는 접근조차 못했던 신용등급 7급 이하의 저신용자를 위한 대출상품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녹색성장산업 총력 지원

최근 은행들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중소기업 대출이다. 특히 경쟁력은 있으나 금융위기로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게 모든 은행들의 공통된 방침이다.

은행들은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서를 받아온 기업에 대해 보증비율을 높이고 보증료 할인 및 대출금리 인하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대출을 늘리고 있다. 또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일시 상환식 대출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만기를 1년씩 연장해 주기로 했다.

신 · 재생에너지 LED 로봇산업 등 저탄소 녹색성장 분야의 중소기업은 더 많은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은행들이 저마다 '녹색금융'을 내세우며 친환경 산업 분야의 기업에 대해 대출 한도를 늘리고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등 지원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업은 대출뿐 아니라 예금을 할 때도 일반 기업이나 개인보다 높은 이율이 적용돼 이중의 혜택을 제공받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을 늘림으로써 경기 활성화를 돕자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특히 향후 경기 회복기에 대비하고 은행의 중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녹색성장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내렸다. 그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시중금리가 대폭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여전히 높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은행권이 대출 마진을 축소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금리를 내렸다.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달 27일 "자체적인 비용 절감을 통해 대출금리를 내릴 수 있도로 하겠다"고 발언한 데 이어 국민은행이 가장 먼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내렸고 신한 하나 우리 외환 한국씨티은행 등도 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했다.

이에 따라 이번 주부터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고객은 이전보다 최소 0.2~0.3%포인트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다. 그 이상의 금리 인하 혜택은 해당 은행과의 거래 실적 등 우대금리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은행별로 최대 금리 인하폭은 1.5~2.3%포인트다.

전세가격 하락 등으로 임대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들은 역전세자금 대출을 이용해 볼 만하다. 역전세자금 대출은 은행이 주택금융공사의 전액 보증을 담보로 집주인에게 1인당 최대 1억원,주택당 최대 5000만원을 빌려주는 대출상품이다.

◆신용등급 낮아도 은행 대출 가능

영세 자영업자,저신용자,사금융 고액 채무자도 은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국민은행은 소상공인 운영자금 대출용으로 5000억원을 책정해 지원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만 20~35세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창업자금 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저소득 · 저신용 계층도 은행 대출이 가능하다. 기업은행은 실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생활안정자금 및 직업훈련 생계비 명목의 신용대출을 실행하고 있고 하나은행과 외환은행도 연소득 2000만원 이하 저소득 계층을 위한 대출상품을 현재 개발 중이다.

불법 사채 등 사금융 채무가 많은 경우라면 은행들이 신용회복기금과 함께 제공하는 환승론을 이용할 수 있다. 환승론은 연 30% 이상인 고금리 채무를 이자율이 연 20% 안팎인 채무로 바꿔주는 대출이다. 원금 3000만원 이하의 빚을 갖고 있으면서 연체가 없고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채무자가 대상이다. 연체가 있는 경우라면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을 통해 원금과 이자를 일부 탕감받고 채무를 상환할 수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