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지곤 못산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든 해를 안끼치고 반듯하게 살려고 애쓴다. 돈 거래에서는 물론이고 거리에 침 안뱉기,화장실 깨끗이 쓰기에까지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남에게 말 한마디라도 좋게 하려는 것은 물론이다.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초석인 이들도 나무에 대해서만은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고 산다.

식목일이 생긴 것은 1946년 미 군정때다. '산림녹화'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식목에 나선 결과 지난 50여년간 나무는 7.2배 증가했다. 그렇다고 나무심기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화석연료를 무차별 사용하는 요즘 나무심기가 더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공산품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깨끗한 숲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국가 경쟁력의 잣대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1인당 연간 2.63t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낸다. 나무를 심어 이를 정화하려면 소나무 947그루가 필요하다. 평균 수명을 80세로 볼 경우 1인당 소나무 7만5760그루를 심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나무에 진 빚을 청산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빚을 줄이려는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나무심기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나무 심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자동차 한 대가 연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8t이나 된다. 산림 1㏊가 있어야 흡수할 수 있는 양이다. 전국의 운전자들이 신호대기 때 기어를 중립에 두는 것만으로도 연간 8920만그루의 소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1년에 1만5000㎞를 주행하는 대형 승용차를 소형으로 바꾸면 870그루,중형 대신 소형으로 교체하면 312그루의 식수 효과를 낸다. 에어컨을 2도만 올려도 35그루,복사기를 절전형으로 바꾸면 65그루의 나무심기와 맞먹는다. 학자들은 이런 노력을 인간의 태생적 책무라고 규정한다.

도시화 산업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가 나무에 질 빚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게 틀림없다. 그 부채를 조금이나마 덜려면 집이나 직장,거리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한 해에 몇 그루라도 직접 나무를 심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