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사이클의 진폭(변동성)을 키우는 데는 규제도 한 몫을 한다. 호황기에 규제를 풀고,불황기에 규제를 강화하는 경우가 그렇다. 똑 같은 규제라고 해도 호황기냐,불황기냐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규제 스트레스가 다르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규제개혁 만족도 조사가 눈길을 끈다.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의 규제개혁에 대해 만족은 27.1%, 보통은 61.1%, 불만족은 9%였다고 한다. 전경련은 참여정부 초기 기업들의 '긍정적 평가'(16.9%)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다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보통'이 61.1%에 달하고 이명박 정부 출범초기 규제개혁에 대한 기업의 기대 수준이 79.6%에 달했던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아직도 대다수 기업은 규제개혁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여기에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기대수준이 너무 높았던 탓도 있을 것이고 국회에서 규제개혁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경기침체기가 규제 스트레스를 높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만약 정부가 경기사이클에 따른 기업들의 규제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규제개혁일 것이다.

국무총리실이 경제위기 상황인 만큼 '한시적 규제유예제'를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규제 자체의 필요성이라든지 이해관계자들 때문에 완전히 완화하거나 폐지하기가 부담스러운 규제들을 일정 기간만이라도 유예를 해 보자는 얘기다. 사실 기존의 규제개혁 수단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규제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유예의 정당성을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찾고 있다.

경제가 위기였을 때 규제를 유예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있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그랬다. 레이건 대통령은 민주당의 카터 행정부 임기 말에 통과됐던 신규 규제의 시행시기를 일정 기간 일괄적으로 연기하고, 재검토하는 '규제유연화 프로그램(Regulatory Relief Program)'을 들고 나왔다. 차이가 있다면 레이건 행정부의 규제유연화가 신설규제에 대한 것이었다면 한시적 규제유예제는 기존 규제가 그 대상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후자가 더 개혁적인 실험이다.

문제는 이 실험이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적지 않은 장애물을 넘어야만 할 것이다. 막상 유예대상이 될 규제를 선정하려 들면 유예기간 종료 후 규제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지,혹 이로 인해 법적 안정성이나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는 없는지 등의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부작용보다 경제활성화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점도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에다 규제권한을 움켜쥔 해당 부처가 얼마나 적극 나서줄지 그것도 변수다.

만약 이 모든 걸 해결하고 성공한다면 한시적 규제유예는 규제개혁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경기사이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규제개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과 관련해 경기가 나쁠 때는 비율을 낮추는 등 경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국제적 논의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규제를 잘 운영하기만 해도 경기진폭을 줄이는 등 경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