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31일 공장 간 생산물량 조정에 전격 합의,생산성 제고를 위한 첫 단추를 풀었다. 이번 물량조정은 지난 2월24일 노사간 물량조정 공동위원회 상견례를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이뤄낸 성과다. 작년엔 물량조정을 놓고 노사가 1년간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었다.

◆물량조정 수시협의 체제로

가장 큰 성과는 울산1~5,아산,전주 등 국내 7개 공장간 생산물량 이전을 수시로 논의할 수 있는 상설 노사 협의체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 아반떼를 생산하는 울산3공장과 같이 개별 공장 대의원들이 반대해도,노조 집행부가 사측과 합의하면 물량 이전이 가능하도록 명문화했다. 예컨대 세계시장에서 소형차가 잘 팔리면,사측이 노조 집행부와의 신속한 협의를 통해 소형차를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향후 상설조직인 물량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탄력적인 시장 대응이 가능하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동안 각 공장별 이기주의 때문에 유연한 생산체제가 어려웠다"며 "도요타,폭스바겐 등 글로벌 경쟁업체처럼 생산유연성 및 고용안정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노사는 이번 합의에 따라 우선 수출이 밀린 아반떼를 3공장뿐만 아니라 일감이 부족한 2공장에서도 병행 생산하기로 했다. 작년 말 혼류설비 공사로 2공장에선 아반떼를 즉시 생산할 수 있어,아반떼 구입 고객의 대기기간이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대신 3공장에선 오는 7월 출시되는 아반떼LPI 하이브리드를 생산한다. 내년 출시되는 신차 역시 3공장에서 만들기로 했다. 3공장 노조원들을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내년에는 베르나,싼타페,그랜저 등의 후속모델이 출시된다.

◆공멸 위기감이 화합 이끌어

노사간 물량조정 합의의 일등공신은 무엇보다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판매 부진속 잔업 및 특근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노조 대의원들 간 '공멸' 위기감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올 1~2월 판매량은 총 38만2600여대로,작년 동기보다 15.7% 감소했다. 특히 국내공장의 수출물량은 같은 기간 11만7300여대에 불과,작년보다 36.5% 급감했다.

정부가 자동차산업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노사화합을 내세운 것도 노조에 대한 간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최근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자동차업계 노사의 선제적 노력이 없으면 지원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강호돈 울산공장장은 지난달 30일 담화문을 통해 "노사가 생존을 위한 노력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정부 지원이 가능하다"고 호소했다. 노조 집행부 역시 물량 불균형에 따른 공장 간 임금격차를 줄이고 고용불안 심리를 완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갈 길 멀다" 지적도

하지만 현대차가 글로벌 경쟁회사들과 같은 노사문화를 갖기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조의 올해 임 · 단협안이 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서다. 노조는 올해 금속노조가 제시한 월 기본급 8만7709원(4.9%) 인상안을 사측에 요구했다. 또 올해 결산하는 회사 당기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작년 기준 현대차의 당기순이익은 1조4479억원으로,이 중 30%는 4344억원에 달한다. 근로자 1인당 1000만원 가까이 달라는 얘기다.

노조는 이와 함께 주간연속 2교대제 및 월급제 전환을 사측에 계속 요구하기로 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번 물량조정 합의는 올해 주요 요구사항인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이나 임단협 등과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