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31일 공장 간 생산물량 조정에 전격 합의,생산성 제고를 위한 첫 단추를 풀었다. 이번 물량조정은 지난 2월24일 노사간 물량조정 공동위원회 상견례를 시작한 지 5주일 만에 이뤄낸 성과다. 작년엔 물량조정을 놓고 노사가 1년간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끝내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했었다.

◆공멸 위기감이 화합 이끌어

노사간 물량조정 합의의 1등공신은 무엇보다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판매 부진 속 평일 잔업 및 주말 특근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노조 대의원들간 '공멸' 위기감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올 들어 내수는 물론 미국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도 판매가 급감했다.

정부가 자동차산업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노사화합을 내세운 것도 노조에 대한 간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최근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자동차업계 노사의 선제적 노력이 없으면 지원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자동차 노조가 한발 양보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이명박 대통령은 현대차 노조를 지목하기도 했다.

강호돈 울산공장장은 지난달 30일 직원들에게 담화문을 보내 "노사화합 개선 등 노사가 생존을 위한 노력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정부지원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노사협의체 상설화도 '성과'

이번 합의에 따라 수출이 밀린 아반떼를 3공장과 2공장에서 공동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울산 3공장 대의원들이 한발 양보한 모양새다. 레저형 차량(RV)을 주로 생산하는 2공장은 그동안 잔업 및 특근이 없는 하루 '8+8근무' 및 일시 휴무를 반복해 왔다. 반면 3공장은 글로벌 소형차 수요가 늘면서 올들어 평일 잔업 및 주말 특근이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아반떼의 경우 연간 48만대의 수요가 예상되고 있지만,3공장 홀로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연말까지 39만대 이상 생산할 수 없는 체제여서 수만대의 공급부족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번 합의를 통해 사측은 노사간 물량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향후 탄력적 시장 대응이 가능한 체제가 마련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생산공장 간 물량 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사 협의체를 상설화하기로 합의한 점은 생산 유연성 확보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란 지적이다. 노조 역시 물량 불균형에 따른 임금격차를 줄이고 고용불안 심리를 완화하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현대차 관계자는 "도요타,폭스바겐 등 글로벌 경쟁업체와 같이 장기적인 생산유연성 및 고용안정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특히 3공장 생산물량의 2공장 이관 합의가 논의개시 5주일 만에 신속하게 이뤄진 점을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여전히 갈 길 멀다" 지적도

하지만 현대차가 노사 문제를 풀기엔 갈 길이 아직 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조의 올해 임 · 단협안이 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서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월 기본급 8만7709원(4.9%) 인상을 요구했다. 또 올해 결산 뒤 회사 당기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기로 했다.

작년 기준 현대차의 당기순이익은 1조6701억원으로,이 중 30%는 5010억원에 달한다. 근로자 1인당 1000만원 이상을 달라는 얘기다. 올 순이익이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친환경차 등의 연구 · 개발(R&D) 비용마저 확보하기 힘든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요구다. 노조는 이와 함께 신차를 국내에서 우선 생산한다는 규정을 명문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