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은행들이 중소기업이나 서민을 외면한 채 주택담보대출이나 부자 마케팅 등 안전한 영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국계은행들이 소비자 편의 제공에는 인색한 채 은행권의 영업시간 변경 방침에 반발, 종전 영업시간을 고수키로 해 국내 금융기관과 마찰을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기관으로부터 금융기법을 배우기를 기대하지 말고 해외시장 진출을 통해 자력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중기대출 인색..서민 보호 외면
3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영국계 SC제일은행과 미국계 한국씨티은행 등 외국계은행과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34조2천억 원으로 작년 말 대비 6천억 원 감소했다.

2월 말 은행권 전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이 428조5천억 원으로 같은 기간 6조1천억 원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중기대출 잔액이 20조3천억 원인 외환은행을 제외하면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 등 두 외국계은행의 중기대출은 14조 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업은행의 중기대출 잔액 81조2천억 원에 비해 5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외국계은행들은 서민 고객의 편의에도 무신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은행들과 저축은행들이 다음 달부터 영업시간을 오전 9시~오후 4시로 변경키로 했지만 SC제일은행과 HSBC는 현행과 같이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으로 유지키로 해 고객들의 혼선이 우려되고 있다.

거액을 예금하기 위해 오전 9시쯤 SC제일은행이나 HSBC 창구를 방문한 고객은 30분 가량을 기다려야 해 도난 위험에 처할 소지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오전 9시부터 근무시간이 시작되는 기업 고객에 편의를 제공하고 자본시장통합법 하에서 증권사와 경쟁하기 위해 개점시간을 앞당기기로 했지만 SC제일은행과 HSBC가 동참하지 않아 고객 혼란이 우려된다"며 "일부 외국계은행이 오후 4시 이후 돈이 되는 고객만 상대할 경우 고객 불만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곳곳에서 돌출 행동
외국계 증권사와 카드사들도 곳곳에서 돌출행동을 하고 있다.

올 초 45개(국내 27개사, 외국계 18개사) 증권사의 공매도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부문 검사 결과 외국계 증권사 18곳 모두가 제재를 받았다.

금감원은 특히 3개 외국계 증권사들에 가장 강도 높은 '기관 경고'를 내렸으며 15개 증권사에 '기관 주의'와 '경영 유의' 조치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미리 팔았다가 나중에 주가가 내려가면 싼값에 되사서 차익을 올리는 기법으로, 작년 글로벌 주가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낙폭을 키우는 주범으로 지목됐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각종 위기설이나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리포트가 떠돌아 금융시장과 기업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진원지를 추적해보면 외국계 증권사와 관련된 경우가 많은데도 증거 불충분 등으로 적발되는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비자카드가 다음 달부터 회원사가 부담하는 국내 카드 이용 수수료율을 0.03%에서 0.04%로 인상할 계획이다.

카드업계에선 신용카드에 '비자' 로고만 붙어 있으면 국내에서 결제해도 사용금액 일부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것도 억울한데 수수료율을 높이는 것은 부당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국내에서 발급되는 해외 겸용카드의 약 70%는 비자카드와 제휴하고 있으며 이 회사가 작년에 벌어들인 국내 결제수수료는 수백억 원으로 추정된다.

A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해외결제는 비자의 결제 망을 이용하지만 국내 결제는 그렇지 않은데도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고객 서비스 개선에 둔감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감축에는 민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작년 9월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희망퇴직을 시행해 전년보다 80여 명 늘어난 190명을 내보냈고 작년 12월 미국계 한국씨티은행은 전년의 배가 넘는 298명에 대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HSBC는 이달 말 전체 직원의 5분의 1수준인 210여 명을 내보낼 예정이어서 작년 6월 말 1천300여 명이던 직원 수가 850여 명으로 급감하게 된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한국지사도 10% 이상 인력을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외국계, 국내 금융산업 별 도움안돼"
외국계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꺼리는 행태에 대해서는 일도양단으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외국계 은행들 나름대로 자산 배분전략에 해당되므로 국민 정서적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화증권의 박정현 애널리스트는 "외국계 은행들은 기업들의 신용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만큼 기업대출을 줄이고 가계대출을 늘린다는 영업전략을 선택했다"면서 "결과적으로는 중소기업 대출을 소홀히 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이런 행태가 한국의 경제를 망가트린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계 은행들이 한국에 선진 금융기법을 확산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들이 많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외국계 은행들의 규모가 작고 기업금융과 개인금융이 종합되지 않은 형태여서 선진기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외국계 은행들이 선진 금융기법 차원에서 한국에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같다"면서 "한국이 선진기법을 배우려면 외국으로 진출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국내 은행들에 자극을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러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이는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