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만우절(萬愚節)이다. 프랑스에서 유래된 풍습으로,가벼운 장난이나 그럴 듯한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헛걸음을 시키는 날이었다.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은 흔히 '4월 바보'로 불렸다. 이런 풍습은 우리나라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평소 거짓말을 못하던 사람도 이날 만큼은 가벼운 장난이나 속임수로 웃음을 주고받았다. 별달리 웃을 거리를 찾지 못하던 시절 일반 국민에게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장난전화가 기승을 부리더니 그런 만우절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공항터미널 같은 다중 이용시설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전화 사건까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잊을 만하면 다시 터져나오면서 사람을 놀라게 만들기 일쑤다. 게다가 근래 들어선 인터넷 해외서버 등을 이용해 전화를 거는 등 수법 또한 한층 교묘해지고 있는 마당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경찰 추적과 단속을 피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는가 하면,동호인 모임까지 결성해 운영 중이라고 한다.

가짜 119 화재신고와 마찬가지로 정작 범인을 잡고 보면 테러 용의점이 없는 청소년이나 성격 장애자 등의 단순 장난전화가 많았던 게 저간의 사정이다. 하지만 장난전화 한 통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버릴 사안은 결코 아니다.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이런 행위의 경우 당장 큰 비용부담이 따르는 데다 대피 등에 따른 혼란을 몰고 오는 까닭이다. 더구나 요즘은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진행 중이어서 자칫 홧김에 실제의 모방 범죄로 발전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만우절을 앞두고 소방재난본부와 경찰청이 119 장난전화에 대한 엄벌방침을 내놨다. 발신자 위치 추적을 통해 장난전화를 건 사람을 찾아내 과태료를 부과하고 형사처벌까지 하겠다는 내용이다. 전화 발신자 확인과 위치정보 시스템 구축을 계기로 예년에 비해 장난전화 건수가 줄어들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소방 · 경찰공무원에게 만우절은 여전히 가장 피곤한 날이 되는 실정이고 보면 처벌방침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만우절이라고 해서 웃음으로 끝나지 않는 거짓말을 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단 그렇다고 웃을 거리 자체를 아예 외면하고 살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싶다.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