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으로 꽃으로 이 세상에 온 것

잊지 말자고

원(願)이 없으니 상처도 없는 것처럼

누구에게라도 즐겁게 바쳐질

맛과 향기와 아름다움을 위해서만

오늘을 걱정하는 저 천성!

빛과 어둠이 정 좋게 산란하는

땅이 좋아서 까맣게 저를 익히는

씨앗들의 저녁

그런 씨앗의 정적을 혹시 아시나요?


-박라연 '그들의 천성'전문


밥과 꽃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들은 땅에 기대어 빛과 물과 온화한 대기를 먹고 산다. 맛과 아름다움만을 위해 존재하는 천성.세상에 온 이유를 한 순간도 잊지 않고 밥으로,꽃으로 스러짐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한다. 더 바라는 것이 없으니 상처도 없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평가를 내리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무욕의 힘이다. 이 봄 그들이 다시 싹을 틔우고 있다. 누구에게라도 즐겁게 바쳐질 몸을 묵묵히 키워갈 뿐이다.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