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간절히 바란다. 출신과 처지에 상관없이 나를 지켜봐주고 어려울 때마다 나서서 해결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어떤 대가도 원하지 않고 오직 내가 잘되고 행복하기만 기원하면서 무슨 일이든 무조건 지지하고 물심 양면으로 든든하게 뒤를 받쳐줄 사람이 있었으면.

'키다리 아저씨'는 그런 멋진 후견인의 대명사다. 고아원에서 자라 오갈 데 없던 주인공 주디가 이름도 모르는 후원자 키다리 아저씨 덕에 상급학교에 진학,뛰어난 글솜씨를 지닌 밝고 건강한 여성으로 성장한다는 줄거리의 동화(진 웹스터 작,1912년)에서 비롯됐다.

가난한 여성이 능력있는 남자를 만난다는 내용인즉 '신데렐라'와 유사하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는 신데렐라의 왕자와 다르다. 왕자는 마법에 의해 공주로 변한 신데렐라에 반하지만 키다리 아저씨는 볼품 없던 소녀를 긴 세월 격려하고 지원,독립적인 한 여인으로 키워낸다.

오죽하면 키다리 아저씨는 모든 여성의 로망이란 말이 있을까. 어찌 보면 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인 '꽃보다 남자' 구준표에 대한 열광도 그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키다리 아저씨가 아쉬운 건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살다 보면 꿈과 열정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도 생기는 탓이다.

정치인들이 특히 더 그럴지 모른다. 정치를 하다 보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고 하는 만큼 이권에 대한 청탁 없이 그저 도와주면 반가울 수 있다. 안그래도 고마운데 통까지 크면 더더욱 고마울 것이다.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 떡값 수수는 처벌되지 않으니 점차 익숙해질 확률도 높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여기저기서 긴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부분 인간적 관계에 의한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으로 생각,별 부담없이 받았다는 건데 정말 그들 모두 생판 모르는 남이 주는 금품을 아무 대가도 없는 공돈으로 여겼다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흔히 떡값이나 보험성 선심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과연 공짜가 있던가. 보험 특히 보장성 보험이란 문제가 생기는 경우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일정액 이상 주고 받으면 상속세나 증여세를 물어야 하는데 남의 돈을 세금 한 푼 안낸 채 받고서 대가성 없는 순수한 후원 운운하는 건 딱하고 어이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