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24일 담판회동은 한마디로 두 야당 지도자와 기자들 간의 술래잡기 게임이었다. 정 전 장관의 전주 덕진 출마를 놓고 두 사람이 정면충돌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회동인 만큼 이목이 집중됐지만 끝까지 회동장소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술래잡기는 '블록버스터'급이었다. KTX가 소도구로 동원됐고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술래잡기는 대학 강연차 대전으로 내려갔던 정 대표가 원래 이용할 예정이었던 KTX 대신 승용차로 서울에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대전까지 정 대표를 따라갔던 기자는 KTX를 타고 귀경했고, 열차 도착 시간에 맞춰 서울역에 나갔던 기자들은 허탕을 쳤다. 서울에 도착하자 정 대표는 차종과 차량번호가 널리 알려진 자신의 승용차 대신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저녁 6시로 예정됐던 회동장소가 당초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정식집으로 알려지면서 언론사들은 이름이 알려진 식당마다 전화를 걸어 예약여부를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인사동의 한 한정식집의 이름이 취재망에 걸렸고 기자들이 속속 집결해 인사동 입구는 취재차량과 TV카메라 등으로 때아닌 장사진을 이뤘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종로 인근의 한정식집 몇 곳과 서울시청 인근의 호텔 이름이 기자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때마다 기자들은 사실여부 확인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야 했다.

기자들이 갈팡질팡하던 그 시간 두 사람은 마포의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당초 인사동 쪽 한정식집에서 만날 예정이었지만 기자들이 진을 치면서 회동 30분 전에 부랴부랴 장소를 바꾼 것이다. 측근들은 "정 전 장관의 재보선 출마와 관련해 뚜렷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힘든 상황에서 두 사람의 난처해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결국 두 사람은 술래잡기에서 이겼다. 기자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심을 얻는 데도 성공한 건 아닌 것 같다. 언론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제1야당의 전 대선후보와 당 대표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공천문제를 놓고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싫었을 것이다. 야밤의 술래잡기는 공천갈등이 국민들 보기에 미안하고 떳떳하지 못한 일임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