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드러난 행위뒤에 숨겨진 진실

⊙ 우리에게 진실은 무엇인가

19세기 말에는 특정 대상이나 현상을 겉으로 드러난 대로 인식하지 않고 그 안에 내재하는 구조를 분석하는 학문적 경향이 나타났다.

사회를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로 분석했던 마르크스라든지,인간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로 보았던 프로이트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현대 언어학의 지평을 열었던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 역시 언어를 구조적 분석이 가능한 대상으로 보았다.

그는 하나의 언어기호를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로 나누었는데 여기서 기표란 쉽게 말하자면 알파벳의 배열 그 자체이며,기의란 배열된 알파벳 속에 담긴 의미를 말한다.

그는 언어기호가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며 둘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사회적 약속만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언어의 특성으로 언급하는 자의성이나 사회성 같은 내용들은 모두 소쉬르에게 빚 진 개념들이다.

이러한 소쉬르의 언어학은 이후 문화를 분석하고 탐구하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소쉬르의 언어학을 문화 분석에 적극 활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문예학자인 롤랑 바르트이다.

그는 기표와 기의가 결합된 하나의 기호는 그 자체가 다시 하나의 기표가 되고 그것이 심층적인,다시 말해서 은폐된 2차적 기의와 결합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자,여기 어떤 잡지의 표지 사진이 있다고 가정하자.

한 흑인 병사가 프랑스 국기 앞에서 프랑스 식으로 경례를 하는 사진이다.

이 사진은 우선 '경례하는 흑인'(1차적 기표)을 통해 '프랑스는 인종에 관계 없이 모든 이들이 국가에 충성한다'는 1차적 기의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렇다면 그 사진을 왜 표지 사진으로 삼았을까.

그것은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흑인 병사가 프랑스식 경례를 하며 프랑스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진을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감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결국 사진의 은폐된 의도,즉 2차적 기의는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고 프랑스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려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중적인 의미작용을 활용하는 사례들을 적잖이 접하게 된다.

아주 간단하게 TV CF 광고는 모두 복합적인 의미작용이 존재하는 사례들이다.

요즘 모 자동차 회사의 광고 문구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어떻게 지내느냐는 말에 ○○○를 보여주었습니다'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를 타고 다니는 것은 성공한 삶이다'는 1차적 기의를 전달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남에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려면 ○○○를 타라'는 중년층의 성취 심리를 자극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그 본질적 의미인 것이다.

자,이제 본격적으로 소설을 감상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와 내재된 의미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 '우상'의 허상을 깨다

[강영준 선생님의 소설이야기] 25. 전상국「우상의 눈물」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와 잠재된 의도가 서로 상반될 수 있음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새 학년이 시작된 어느 고등학교 2학년 학급이다.

작품의 주요 갈등 축은 학급을 특별한 문제 없이 이끌려는 담임 교사와 폭력으로 학생들에게 군림하는 최기표라는 학생이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는 담임 교사의 편에 서서 기표를 길들이려는 반장 형우와 이와 반대로 1, 2년씩 유급당한 채 기표를 따르는 소위 재수파가 있다.

본격적인 사건은 반장인 형우가 최기표의 유급을 막기 위해 반의 우등생들에게 기표의 시험을 도와주자는 제안을 하면서부터이다.

기표는 이 일에 분노하게 되고 재수파 무리와 함께 반장인 형우를 심하게 폭행한다.

형우는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상처가 심각했지만 끝내 가해자를 밝히지 않았고 그 까닭에 학급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의리 있는 학생으로 통하게 된다.

이후로 기표를 제외한 소위 재수파들이 하나 둘씩 형우에게 사과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형우는 기표의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재수파들이 혈액은행에서 피를 뽑아 기표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형우는 기표를 효자로,재수파들을 희생적이고 의리 있는 친구로 학급에 알리게 되고 그 사실은 이내 학교 전체에 퍼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형우는 기표의 여동생이 버스 안내원을 그만두게 됐고 술집에 나가려고까지 했다는 말을 전하며 어려움에 빠진 기표를 도울 것을 제안하게 된다.

감동적인 형우의 말에 담임 교사가 당장 1만원권을 꺼내놓고 이후 학생들뿐만 아니라 각계에서 기표에게 성금이 전달된다.

그리고 급기야는 기표의 이야기가 영화화될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형우는 진심으로 최기표를 위했던 것일까.

작품의 서술자이자 형우와 가깝게 지내던 '나(이유대)'는 형우와 담임 교사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종종 추궁한다.

왜냐하면 형우는 언젠가 '나'를 폭행했던 기표를 두고 "그 새낀 악마"라고 내뱉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형우가 기표에게 베푼 호의와 동정은 실은 신화적 존재로 군림해 왔던 기표의 허상을 '빈곤'으로 길들이려는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 우상을 무너뜨리는 법

아래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다.

담임 교사가 '기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 진의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기표의 자리가 빈 것을 알았다.

다음날도 그는 결석했다.

무단 결석이었다.

담임 선생이 한 아이를 기표네 집에 보냈다.

"집에도 없어.이틀 전에 집을 나갔대" (중략)

담임 선생은 기표 어머니를 내쫓듯 교무실에서 밀고 나갔다.

그네는 교무실을 나가며 자꾸 아쉬운 듯 우리들 얼굴을 돌아다보았다.

그네를 배웅하고 돌아온 담임이 의자에 소리 나게 주저앉으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 망할 새끼가 끝까지 말썽이란 말이야."

그는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내뿜으며 투덜거렸다.

"내일 천일영화사 사람들하고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잖냐? 그런데 이 망할 새끼가……."

그는 서랍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우리들 앞에 내던졌다.

기표가 바로 밑의 여동생한테 보낸 편지였다.

편지 맨 앞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 전상국 「우상의 눈물」


위의 인용에서 보듯 결국 담임 교사가 '기표'를 바라보는 시선은 '끝까지 말썽을 부리는 망할 새끼'에 불과하다.

작품에서 형우와 담임 교사가 최기표에게 하는 행위를 하나의 기호라고 생각한다면,그것의 1차적인 의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유급을 당하는 학우를 돕자'는 것으로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에는 2차적 기의,곧 심층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학급을 통솔하는 데 눈엣가시 같은 최기표를 길들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우와 담임 교사는 어째서 진의를 은폐한 채 행동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자.

'최기표-신화적 존재'라는 기호를 깨뜨리기에 무엇이 더욱 적합한가를.

만약 담임 교사가 최기표를 요주의 인물로 정하고 그를 억압했더라면 그것은 그의 신화적 이미지를 더욱 공고하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반항과 폭력의 이미지로 신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화를 깨기 위해서는 그가 평범한 존재이며,아니 그보다도 못한 불쌍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면 된다.

결국 형우와 담임 교사는 동정심으로 진의를 은폐한 뒤 그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한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하기에 이른 것이다.

⊙ 은폐된 의도를 이해하기

최기표는 잘못된 학생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를 고립시키고 길들이려 했던 형우와 담임 교사 역시 옳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형우와 담임 교사의 행위는 그 의도가 은폐되어 있어서 여전히 선의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도 분명 그 의도가 은폐된 행위나 기호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롤랑 바르트의 사진 분석이나 광고 분석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라든지 드라마,그리고 실제의 삶에서 얼마든지 은폐된 이데올로기가 잠재할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행위나 기호를 받아들일 때는 그 자체만을 살피는 것보다는 그것이 놓인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