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이 캄캄할 때,이걸로 끝인가 싶어 가슴이 터질 것같을 때 떠올리는 영화가 있다. '쇼생크 탈출'이 그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주인공 앤디가 길고 긴 오물 통로 속을 기어 탈출에 성공,쏟아지는 빗속에 양팔을 벌리고 서서 자유를 외치는 것도,태평양의 한 섬에서 동료 레드를 맞이하는 모습도 아니다.

'정신 차려야지' 싶어지는 장면은 앤디가 악질 간수의 세금을 줄여주는 대가로 동료 죄수들에게 맥주를 나눠주도록 한 다음 즐거워하는 동료들을 보며 미소지을 때와 도서실 문을 걸어잠근 채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저녁바람이 부드럽게'를 내보낼 때다.

성실한 은행 간부였던 앤디(팀 로빈스)는 바람 난 아내와 그 정부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쇼생크로 끌려온다. 죄수들은 수송차에서 내리는 신참들을 보며 누가 먼저 울까 내기한다. 대부분 앤디를 지목했지만 틀렸다. 그는 울지 않았다. 수감 초기 누명을 썼다는 그에게 돌아온 답은 "여기서 죄 지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한다. 교도소장과 간수는 잔인한 데다 탐욕스럽고,몇몇 죄수들은 포악하기 그지 없다. 그래도 그는 살아낸다. 동성애를 거부하다 죽기 직전까지 이르지만 삶을 포기하지도,주위 사람을 향한 문을 닫지도 않는다. 온갖 억압 속에 짐승같은 취급을 받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주위와 나눔으로써 얻는 일의 기쁨을 찾아낸다.

소장과 간수들의 회계사 노릇으로 신임을 얻고,도서실을 만들고,절도죄로 들어온 토니에게 글을 가르친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줄 토니가 검정고시에 합격하던 날 소장에게 총살당했어도 그는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다. 그는 레드에게서 구한 끌망치로 파낸 구멍으로 탈옥,소장의 가명계좌에서 돈을 찾고 교도소 비리를 폭로한 뒤 유유히 떠난다.

사노라면 한 순간 바닥 모를 늪에 쳐박히고,캄캄한 터널에 갇히고,덫에 걸리기도 한다. 난 데 없이 낚이고 꼼짝 없이 털린다. 힘이 없어 고통스러운 건 신인 여배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출 학자금 갚을 길이 막연한 미취업자,구조조정에 내몰린 봉급쟁이,퇴직금을 털어 시작한 자영업에 실패한 사람 모두 고통스럽다.

그동안 '쌓아 놓은 인맥이 얼마인데' 싶었던 예상과 달리 언제 봤더냐 식으로 등 돌리는 주위의 차가운 눈빛에 문 밖 나서기가 겁나는 은퇴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너진 개인은 힘이 없다. 여건 탓도 있겠지만 본인 잘못이 크리라 생각한다. '그런 게 아니야'는 어떤 경우에도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낭떠러지와 늪,터널과 덫에서 탈출하려면 일단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눈 크게 뜨고 똑바로 파악해야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해낼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어떤 경우에도 빠져 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일이다. 희망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하거니와 희망을 가져야 길도 생긴다.

봉급쟁이가 자영업에 실패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아니꼬운 게 많아서라고 한다. 눈높이를 낮춘 취업을 거부하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여러 개의 포물선이다. 누구나 올라갔다 내려오고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 꼭짓점을 높이는 일도,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 일도 희망과 의지를 잃지 않을 때 가능하다.

가난보다 무서운 건 가난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하거니와 터널과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건 스스로 만든 벽과 유리천장을 깨뜨릴 수 없을 것이란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쇼생크 탈출의 포스터엔 이런 대목이 있다. '두려움은 인간을 가두고,희망은 자유롭게 한다. ' 죽자고 덤비면 살 길이 열린다고 한다. 끝이다 싶을수록 자신을 믿고 죽어라 대들어볼 일이다. 다이 하드(die hard)!